25.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과 내 청춘의 스톡옵션

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25

by 지금을

입사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언니처럼 따랐던 중국팀 멤버가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그 날 아침 웬일인지 꿈을 꾸는 듯한 눈을 하고 있던 그녀는 이 회사가 싫은 건 아니지만 직장생활은 5년 넘게 했더니 좀 쉬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애나님은 꿈이 뭔가요?"

그 날 저녁 일곱시, 그녀는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났다. 회사에 들어온 지 겨우 4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녀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보내며 어쩐지 나도 눈물이 났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나는 유난히 이별을 힘들어하는 편이다. 우는 내게 초기 멤버로서 수많은 퇴사자를 지켜봤을 디자이너가 다가와 말했다.

곧 익숙해질 거에요


나는 적응되었던가.


스타트업은 이별이 많다. 대기업만 해도 1년 안에 퇴사할 확률이 27%라는데 가진 건 비전뿐인 스타트업은 일상적으로 사람이 드나든다. 해서 우리는 이 잦은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가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피차 너무 슬프지 않고 진지하지 않게, 새로운 도전을 찾아 떠나는 동료를 보내는 법.

바로 엽사 풀기다.

이 의식을 위해서 평소에 동료들의 못생긴 순간을 하나도 허투루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입 벌리고 자는 모습이나 야근으로 폐인이 된 얼굴이면 금상첨화. 슬랙 창과 페이스북 그룹에 끝없이 올라오는 퇴사자의 엽사들을 보면 헛헛한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지기도 한다. 찍사 개발자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을 수많은 나의 엽사를 생각하면 퇴사 의지가 꺾이는 순기능도 있다.


어쨌든 스타트업이란 언제나 이별이 도사리고 있고, 회사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서비스의 성공을 생각하며 다 함께 밤낮으로 일하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지만 가끔 불안감에 잠식될 때도, 번아웃에 빠질 때도 있다.

나는 슬플 때 학춤을 춰

그럴 때면 나는 아이돌 덕후인 동료와 춤을 췄다. 샤이니부터 세븐틴까지, 남자 아이돌 그룹 히트곡을 랜덤으로 추고 나면 서로의 바보 같은 모습에 마구 웃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웃다 보면 복이 올거야. 마무리는 늘 칼군무로 유명한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이다. 뜀틀 안무를 완성하겠다며 사무실 바닥에서 다리를 찢던 나는 어렸고 너도 어렸고 우리 회사도 어렸지.


이렇게 절절히 몸부림을 치다가도 결국 퇴사의 순간은 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게 끝은 아니다. 스타트업에는 퇴사자와 회사를 마지막까지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전남친 같은 회사를 마냥 망하라고 저주할 수 없게 만드는 그것. 스톡옵션이다.


입사한 지 6개월이 되자 HR 담당자가 나를 유리방으로 불렀다. 그는 내 앞으로 스톡옵션이라는 것이 나올 건데 못 받는 직원들도 있으니 이 문을 열고 나가면 이 사실에 대해 절대 말해선 안 된다고 했다. 당시 난 스톡옵션이 뭔지 잘 몰랐다. 애초에 스타트업에 원대한 뜻이 있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합류한 것이라 그랬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동료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었다. 덕분에 HR 담당자는 매번 장황하게 스톡옵션의 개념을 설명해야 했다. 물론 그의 기나긴 강의에도 우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나오곤 했다. 주는 대로 받을 뿐 내가 가진 스톡옵션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니 꺼 휴지조각이야'란 말에 흔들리기도 하고 사지 말란 말에 망설이기도 하고. 퇴사를 앞두고 스톡옵션을 살지 말지 고민하는 내게 아빠는 말했다.


"스톡옵션을 살 거면 넌 그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해. 그 회사의 비전을 믿고 잘 될거라 생각하니까 사는 거잖아. 그럼 왜 지금 포기하는 거야? 성공하게끔 계속 애를 써야지. 만약에 여기서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면 스톡옵션도 사지 마. 그건 손해야."


하지만 내 청춘의 한 자락인걸.

결국 다들 셈을 하기보다는 추억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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