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자르자"
"귀엽게?"
"응"
언제부턴가 자연스러워진 집 풍경. 우리집 둘째 아들은 엄마의 머리자르자는 말에 아무 거부반응이 없다. 귀엽게 잘라줄거냐며 오히려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넨다. 뭣도 모르고 시작한 아이들의 셀프 이발은 벌써 2년 차가 되어 간다.
처음부터 집에서 이발을 한 건 아니었다. 첫 시작은 베냇머리였다. 아이들이 태어나 베냇머리를 잘라내야 했을 땐 군인시절 일명 깍새로 군복무를 했던 아빠의 이발기술로 시원하게 머리를 밀었다. 바리깡이 없던 시절첫째아이의 머리를 면도기로 밀기도 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나로써는 너무 겁이났지만 자신감 넘치는 아빠는 시원하게 아이의 머리를 다듬었다.
그 다음 둘째 아이의 베냇머리를 자르고 셋째 아이 베냇머리를 자르면서 바리깡이라는 것을 구매하게됐다. 미용이라는 기술에 무한매력을 느낀다는 애들아빠 덕분에 어깨너머로 남자아이의 커트에 대해 대충 이해하게 됐다.
결정적으로 요리부터 모든 것을 집 안에서 해결해야 했던 쿠웨이트 생활을 하던 시절. 미용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2020년 초반 쿠웨이트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부분적 통행금지(Curfew)를 시행했고 중반에 들어서는 24시간 통행금지를 시행했다. 아이들의 머리는 갈 곳을 잃고 정처없이 얼굴 위를 떠돌아다녔고 애들 아빠의 머리도 자연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애들아빠는 신이나서 아이들의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고 심지어 회사 지인의 머리도 다듬어주기 시작했다. 회사인이 되지 않았다면 미용사가 됐을 거라는 그의 말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머리를 손질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보니 나의 손이 필요했다. "이럴경우엔~ 어찌고저찌고 옆머리는 어찌고저찌고"라는 그의 미용 강의를 듣고 그의 머리를 손질했다. 손을 바들바들 떨어가면서 성인 남자의 머리를 자르는 경험을 했다. 참고로 어릴적 인형 머리 잘라본 게 전부이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들 아빠와 떨어져 사는 기간 동안 나는 내 아이들의 머리를 책임져야 했다. 남자아이들은 짧은 머리이다보니 한달에 한 번 꼴로 머리를 다듬어 줘야한다. 코로나때문에 미용실 가는 것도 망설여지고 한 번에 12,000원 가량 내는 돈도 아깝게 느껴졌다. 물론 디자이너들이 이발하는 것은 훨씬 예쁘지만.
친엄마 집에서 기생하던 6개월 동안 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손질했다. 그리고 나의 개동생 '두리'의 미용도 하게 됐다. 우리 두리는 그때 당시 17살로 나이가 너무 들었고(노견) 몸도 아파서 펫 숍에서 더이상 미용을 할 수가 없다고 거부당했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나서 온몸의 털을 밀어주었다. 우리 두리는 2020년 10월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 전에 나와 두리가 함께한 추억이 더 쌓인 것 같아서 좋았다. 내가 우리 두리의 털을 밀 수 있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딴 길로 샜네....)
그리고 지금까지 아이들의 머리는 정기적으로 내가 자르고 있다. 물론 실력은 별로다. 그냥 머리길이를 짧게 하는 정도랄까. 투블럭으로 멋있게 자르고 싶은데 자꾸 뚜껑머리가 된다. 하지만 이발이 다 끝나고 나면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머리를 요리조리살피는 둘째 아들이 너무 귀엽고 고맙다. 셋째는 그야말로 길이만 짧게 하는 수준...
딸은 머리를 자르지 않고 계속 기는 중이다. 엉덩이까지 길고나면 기부를 할 예정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어머나 운동본부'라는 곳을 통해 하면되는 것 같다. 아이에게 뜻깊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싶다.
나의 셀프 이발은 계속 시행될 수 있을 진 모르지만 가정경제에 도움도 되고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는 것 같아서 당분간은 계속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