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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떨림 Nov 02. 2021

반복되는 삶일 지라도

우리는 살아간다.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이혜민 작사, 작곡의 아빠와 크레파스.


우리 어린시절 늦은 저녁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만 봐도 저기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서 잠들지 못한 저녁. 어떤 날엔 아버지 친구분이 90년대에만 존재했던 과자종합선물세트의 박스를 사가지곤 오셨다. 


오빠와 나는 신이나서 그 안에 들어있는 과자를 서로 비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악랄했던 나는 오빠의 착한 마음을 이용해 갖고싶던 과자를 갖지 못했을 땐 억울해 하며 울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오빤 정말 너무 착했다. 


초등학생시절 나의 엄마는 500원 이상 나에게 용돈을 준 적이 없다. 몸에 좋지 않은 커피와 콜라는 입에 대지도 못하게 했다. 콜라를 먹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때 쯔음인가 아파트 단지 내 소독이 있던 날. 친구가 이 소독약을 내 몸에서 없애기 위해서는 콜라를 마셔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한 모금한 콜라는 너무나도 내 속을 뒤집어 놓았고 엄마에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애기했다. 그동안 콜라를 먹으면 큰 일 난다고 애기했던 엄마는 그래서 입에 콜라는 대지도 못하게 한 엄마는 그냥 '훗~ '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나를 귀하게 키운 그리고 키운 것 같은 유년시절. 회사일에 바쁘던 아빠와, 더불어 엄마는 웨딩숍을 운영하신 적이 있다. 전라남도 순천에 두번째로 생긴 웨딩 숍이었다. 화려한 웨딩드레스와 사진촬영이 내 눈앞에서 왔다갔다 했다.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어여쁜 하얀 드레스를 입히고 기억에 남는 드레스 촬영을 했다.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포즈를 취해 보라며 말하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 엄마는 나보다도 정말 예뻤다. 


2013년 나의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그때 엄마와 했던 사진 촬영 생각이 너무나도 났다. "엄마가 남들을 위해 준비하고 재봉한 드레스를 그들은 행복하게 입었겠구나. 그리고 이제 내가 그 드레스를 입는구나"라 싶었다. 엄마는 항상 힘이 들어도 열심이였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습관인지 모르겠다. 그냥 누군가가 쇼핑백을 들고 내 집을 들어오면 나를 위한 선물을 들고 오는 기분이 든다. 아빠가 그랬듯, 엄마가 그랬듯, 내 유년 시절 그렇게 기뻤던 순간을 회상하게 되면서 내 기분 마치 그렇게 하늘을 나는 듯이 붕~ 날게 된다.


내 아이들에게도 나의 나의 남편이자 애들아빠가 그렇게 크레파스를 들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이겠지,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나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겠지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루, 하루 씹어삼키기도 힘든 나날들이지만 우리는 꾸역꾸역 소화시키면서 또 하루를 살아간다. 나의 어린시절 그리고 지금 어른이 된 나를 나의 부모님과 겹쳐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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