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매일의 처절한 고민
퇴사를 하고 혼자 밥먹고 돌아다니고 보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된다.
'낯설지 않다.'라는 표현보다는 피동사로 '낯설지 않게 된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만큼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며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퇴사 후 혼자 만의 시간인 듯하다.
맨 처음 퇴사했을 때는 집의 냉장고에 묵혀있는 먹거리들을 전부 비워야 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있었고 일주일은 정말로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했다.
하지만 한달이 되고 두달이 되고 집에서 밥을 해먹는 것 자체가 너무 귀찮아지면서 소셜배달앱을 이용하여 비싼 배달팁을 마다하면서 주문해 먹었다. 그러다 보니 배달앱의 VIP회원이 되어 마일리지를 써보는 영광(?)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음식점의 조미료에 질린 나머지 빵이나 라면 아니면 편의점의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수였다.
그러다 문득 배 속의 아이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골고루 잘 먹어야 하지만 집에서 혼자 먹는 밥은 다채로운 반찬을 식탁에 두고 먹을 수 없으니 국이나 찌개 또는 카레를 해서 밥에 말아먹을 때마다 그 죄책감은 산더미처럼 불어갔다. 이내 그런 죄책감은 사라지고 다시 굶거나 인스턴트를 흡입하며 임산부 영양제가 그래도 도움은 되겠지라며 합리화 한다. (최근들어 느끼는 거지만 나는 합리화를 참 잘하는 인간인 듯 하다. )
이제 퇴사한지 5개월차가 되니 어느정도는 집에서 밥을 해먹는 것이 귀찮지 않아졌다. 다만, 계산해보면 식재료를 구입해서 밥을 해먹는 것과 밖에서 혼밥을 하는 비용은 별반 차이가 없다.
외출이 없는 날은 반찬이 없어도 국과 찌개는 꼭 끓여서 먹고 외출 있는 날은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해서 용감하게 가게에 들어서서 주문한다.
며칠 전의 일이다. 미세먼지는 강하지만 봄 기운이 완연한 날씨라 그런지 도다리 쑥국이 어찌나 먹고 싶은지...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근처 가게 중 도다리 쑥국을 파는 집이 있는지 찾아보아도 없어 집에서 계란간장밥이나 해먹자라는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때 눈에 띄는 생대구탕집이 있었고 입간판에는 생대구탕, 대구찜, 알밥, 제육덮밥, 알탕 메뉴가 적혀있어 알탕이라도 먹어야지 하고 (대구탕은 비싸니 당연 패스하였다.)귀신에 홀린 듯 가게에 들어섰다.
'여기 1인 식사도 가능하지요?'
'그럼요. 가능합니다. 편한 자리에 앉아서 메뉴 말씀주세요.'
'알탕 주세요'
'어쩌죠? 지금 가능한 메뉴가 생대구탕 밖에 없어요.'
'.....(속으로) 그럼 왜 메뉴를 말해달라 했을까?' 그럼, 대구탕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 가게의 메뉴판에는 '생대구탕 15,000원, 대구탕 9,000원'으로 적혀 있었고 난 9,000원 대구탕을 생각하고 주문하였다.
그런데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등장하더니 1인분 대구탕의 양은 그야말로 어마어마 하였다.
'이거 1인분 맞지요?'
'네, 맞습니다.'
오~~ 9,000원치고 꽤 괜찮은 맛과 비주얼이여서 호호 불면서 맛있게 먹었다.
'계산할게요.'
'15,000원 입니다.'
그렇다. 내가 가성비가 좋다며 먹은 대구탕은 15,000원짜리 생대구탕이였다. 하하하.
이미 내 식도를 거쳐 위에서 운동할 준비를 하는 대구탕을 탓할 수 없는 노릇이랴.
그래서 남은 대구탕의 포장이 가능한지 물어보았고 가능하다는 말에 냉큼 어서 포장해달라 하였다.
그렇게 나는 15,000원 생대구탕은 혼자 사치 부리며 먹게 되었고 포장한 대구탕을 집에서 족히 2일 연달아 먹었다.
언제쯤이면 나도 혼밥의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고독한 미식가는 될 수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