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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ㅇㅈ Jan 30. 2020

퇴근하고 어딜 그렇게 가냐고요?

내가 수영을 하는 진짜 이유

퇴근 후 일주일에 한 번, 많게는 네 번 가는 곳이 있다. 하루 종일 지친 몸을 이끌고 그 어느 때보다 몸을 힘차게 써야 하는 곳. 새파란 물이 가득한 수영장이다. 어릴 때 배웠던 수영은 또래 중 누가 더 빠른 지가 초미의 관심사였고, 가장 빠르게 레인을 돌아올 때 가장 큰 희열을 느꼈다. 하루는 같은 반 친구들과 자유형 시합을 했는데 이기겠다는 마음 하나로 가장 먼저 골인했다. 내쉬는 숨까지 참아가며 거침없이 나아가는 나를 보고서 코치님은 대회 출전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때는 제대로 된 동작을 하기보다 빠른 게 잘하는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속도 내기에만 급급해 수영 수업만 끝나면 헛구역질에, 지칠 대로 지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결국 대회 출전은 고사하고, 접영도 다 배우지 못한 채 그만두고 말았다.


어른이 되고서 다시 시작한 수영은 좀 달랐다. 나는 상급이었는데, 그 위로 마스터, 교정 이렇게 세 반뿐이었고 마스터에 가기 위해선 모든 영법을 할 줄 알아야 했다. 반 이름만 상급이지, 사실상 킥판에 의지한 채 물에 겨우 뜨는 초보부터 수영은 할 줄 아는데 개헤엄 치듯 나아가는 사람, 평영은 나보다도 속도가 안 나는데 접영은 또 할 줄 아는 사람까지 아주 다양했다.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고 들어온 수업 첫날은 아무래도 긴장이 되었다. 드넓은 바다를 갈 때는 튜브가 있었고 워터파크를 갈 때는 구명조끼가 있었다. 수영을 하러 수영장에 간 건데  아무 장비 없이 수영을 한다는 게 괜스레 어색하고 떨렸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났어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로는 그려지지 않던 게 내 차례가 되니 몸이 알아서 배영을, 평영을, 자유형을 하고 있었다.

코치님은 내가 우리 반에서 비교적 젊고 수영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하셨는지 매 수업마다 나를 1번으로 세웠다. 수영 수업에서 첫 타자의 역할은 생각보다 막중하다. 새로운 동작을 배울 때면 앞으로 나와 시범하기도 하고, 코치님이 지시한 동작 그대로를 가장 먼저 척척 해내야 했다. 그러면 그다음 타자들은 앞사람의 동작을 살폈다가 적당한 거리가 생겼을 때 출발한다. 내가 다니고 있는 수영장은 세로 25M로, 한 바퀴를 돌고 나면 50M가 되는 크기다. 반 바퀴를 다 돌고서 턴을 하면, 반대 레인 끝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차례차례 보이는데 꼭 엄마 오리를 따라가는 아기 오리들 같았다.


한참 수영에 재미 붙였을 즈음에 친구가 물었다. 수영이 뭐가 그리 좋냐고. 전에도 다른 운동을 꾸준히 하긴 했었는데 수영처럼 퇴근이 기다려지는 운동은 없었다. 그리고 운동과 샤워가 한 큐에 끝나는 운동도 없었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배울 때도 샤워 시설이 있긴 했지만 간이용에 가까웠고 씻어야 할 만큼 땀을 흘리지도 않았다. 매트나 기구 위에서 운동을 하는 것도 체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어느덧 쌓여가는 연차만큼 고여가는 고민들을 더 분출할 수 있는 활동적인 게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수영은 내가 해본 운동 중에 칼로리 소모가 가장 컸고, 그만큼 활력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수영이 내 인생 운동이자 가장 좋은 취미라 생각했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왔다. 여느 다른 날과 같이 수영을 하고 나오다 선반에 그만 손가락을 베이고 만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인대 직전까지 찢어져서 네 바늘이나 꿰맬 줄은. 쇠로 된 선반에 베였으니 소독이라도 할 심산으로 병원을 갔는데 파상풍 주사에 마취 주사까지 맞고 말았다. 네 방의 주사를 맞고 네 바늘을 꼬매는 동안에도 꾹 참고 있었는데 몇 주후에나 실밥을 풀 수 있다는 말에 결국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동안 수영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수영하다 다쳐놓고도 미련하게 머릿속엔 수영 생각뿐이었다.



저녁 6시. 평소 같았으면 빠르게 업무를 마무리하고 뛰쳐나갔을 시간인데, 수영을 못 가게 되니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때 알았다. 수영이 왜 좋은 지 늘어놓던 이유들보다 내가 수영에 빠진 진짜 이유를. 수영 가는 날에는 늦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에서 나를 떼어내야만 했다. 하지만 수영을 가지 못하게 되니 퇴근 시간이더라도 일하는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조금만 더 하다 갈까'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누군가 '물건이 한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지' 물었을 때, 동료는 그 물건으로 '파자마'를 꼽았다. 일과 일상의 전환이 잘 안 되는 편인데, 집에 와서 파자마를 입는 순간 해방감을 느낀다며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나에겐 수영이 그랬다. 일을 하다 제시간에 퇴근을 못하기도 하고, 어쩔 땐 샤워하고 잠드는 순간까지 일 생각이 비집고 들어와 일상으로 전환이 어려웠는데, 수영장에 뛰어들고 나면 더 이상 생각나질 않았다. 수영장에 들어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는 모든 세계와 차단된 채 나만 바라보면 되었다. 들이마시는 호흡에 물에 뛰어들고는 나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물 안에서는 팔과 다리에, 밖에서는 숨을 내쉬는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레인 끝에 다다랐다. 그렇게 한 바퀴 두 바퀴를 돌고서는 일에서도, 내 몸도 점차 자유로움을 느꼈다.



수영이 내게 준 건 자유로움 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수영을 가지 못해 힘든 시간들을 견디고 실밥을 풀자마자 수영장에 달려갔는데,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따라와 주질 않자 실망감만 가득 안고 집에 돌아왔다. 분명히 일에서 해방되어 좋다고 간 운동이었는데,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게 되다니 이만큼 절망스러울 수 없었다. 그동안 수영을 하면서 자유로워진 것도 맞지만 '잘'하고 있다는 것에도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수영을 다시 배우면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렸을 적 친구보다 앞서 나가려 무작정 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 배운 동작이 잘 되지 않을 때면 주말에도 수영장에 가서 연습하곤 했다. 꼭 수영이 아니더라도 퇴근 후 친구를 만나는 것도 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퇴근 후에도 일에 진짜 해방되지 못하는 건 두렵거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일 거다. 잘하지 못하고 있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다 보니 수영장에서만큼은 자유롭게 헤엄치며 원하는 동작을 척척 해내는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에 뿌듯하고 성취감이 들었다.


일을 할 때엔 내가 잘하고 있는지 물음표가 생길 때가 많다. 일이 잘 되질 않아 밤낮으로 때론 주말까지 해봤는데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땐 내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건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일이 많은 건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수영은 나와의 싸움에서만 이기면 되었다. 그래서 수영을 그리도 집착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일에 대한 대답은 찾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퇴근 후 수영을 간다. 일만큼 소중한 나의 일상을 시작하러. 그리고 잘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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