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리고 5년 후 나에게 건네는 말
몇 주전부터 특이한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 일 년을 담을 수 있는 보통의 다이어리와는 다르게 페이지마다 질문이 적혀 있고, 총 365개의 질문을 5년 동안 답하게 되어있다. 해가 바뀌면서 같은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 어떻게 달라졌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며칠 전엔 이런 질문이 쓰여 있었다.
‘무슨 요일을 가장 좋아하는가? 그 이유는?’
나의 대답은 이랬다.
‘토요일. 일이 끝난 금요일 저녁부터 신나서 토요일 종일 행복하다가 일요일 밤부터 다시 시름시름 앓는 마법 반복중..’
최근 업무량이 부쩍 늘어나 늦은 시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퇴근 후 승급교육까지 받고 돌아온 동생을 마주하곤 했다. 그럴 때면 모두가 힘든 시기인가 싶고, 이럴 때마다 누가 긍정 에네르기파를 좀 쏴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 인터뷰이: 내 주변에서 가장 긍정적인 사람
- 질문: 당신의 긍정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눈앞에서 버스를 놓쳐도, 그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긍정왕 친구 M이 생각났다.
“너의 긍정은 어디서 오는 거야?”
M은 어렵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음, 무엇이든 좋게 생각하려는 일종의 습관 같아. 내가 좋지 않게 생각하는 순간부터, 이건 나한테 스트레스로 되어 돌아오니까.”
M을 안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태초부터 긍정적이었던 건지, 바뀌게 된 건지 '언제부터 긍정왕이었는지' 물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야. 사실 중국 유학 시절, 예체능 쪽이 아니었는데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면서 일종의 강박증이 생겼던 거 같아. 윷판 하나를 그리더라도 찌그러지지 않게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물병이나 자를 대고 그렸어. 친구들한테 선물을 줄 때도 그냥 주는 법이 없었고. 무언가 디자인을 넣고 그럴싸한 느낌이 들어야 마음이 놓이더라.”
그러다 어느 순간, 이렇게 스트레스받아가는 상황이 많아지니 버겁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내려놓게 되었어. 그렇게 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적고, 좋은 부분만 생각하게 되더라고.”
출근길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는 만큼 비통한 일이 없는데, M은 만약 그 버스를 타서 사고라도 났다면? 하고 생각의 전환을 한다고 했다. 버스를 놓쳐 속상해하기보다 저 버스를 놓침으로써 큰 사고를 피해 하루를 벌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것인지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에 관대해져 나태해지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적당한 관대는 여유를 만들고, 지나친 관대는 나태를 만들기도 한다. 처음에 '긍정'이라는 건 어떤 일이든 좋게 생각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긍정'의 시작은 벌어진 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긍정'의 사전적 의미가 ‘어떤 생각이나 사실 따위를 그러하거나 옳다고 인정함'이었다. 무작정 좋게 생각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다음을 또 그대로 마주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긍정적인 태도일 수도 있겠다.
매일 다이어리를 쓰면서 어떤 날은 생각지 못한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이제껏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거나 간단한 질문인데도 그대로 대답하기 어려운 날도 있었다. 이제는 어떤 질문이더라도 좋은 대답 말고 그대로 적어보려 한다.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한 지 1년, 2년이 지나 5년이 되었을 때는 조금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