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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 Dec 15. 2023

타이페이 스토리 7.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

기대 하지 않았던, 그래서 더 마음에 남았던 푸롱

17. 친절은 대만을 기억하게 만들고


10월에 대만행을 결정하고 원래 계획은 타이중 1박, 타이베이 1박 총 2박 3일의 일정으로 계획을 했었다. 그러나 푸롱 하나에 모든 일정을 전면 수정하고 오로지 타이베이 2박 3일로 최종 결정을 내렸고, 숙소도 다시 예약을 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지금도 남아 있는 시원한 추억을 남겨주었다.


푸롱으로 향하기 전, 이른 아침에 융캉제에서 볼 일을 보는데 비가 계속 왔다. 내가 푸롱을 가는 이유는 자전거인데, 비가 오면 이 계획은 사라지는데 이를 어쩐담? 근데 또 마음 속 한구석엔 '귀찮은데 그냥 타이베이 구경이나 마저 할까?'라는 양가감정이 들기도 했다. 스타벅스에서 호지차라떼를 마시며 계속 하늘을 봤는데 다행히 비가 멈췄다. 그래서 발걸음을 옮겼다.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가자 푸롱.


숙소가 송산공항 근처에 있던터라 송산역으로 향하려고 했으나, 지하철을 잘못 탔다. 결국 타이베이메인역으로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푸롱행 표를 끊었다. 아무리 블로그를 찾아봐도 어떻게 가야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역무원분께 길을 물었더니 지금 바로 플랫폼 3으로 가라는 것이다. 정말 허겁지겁 달려갔는데, 아무리 봐도 푸롱이라는 글자가 안보였다.


역에 서있던 다른 분께 또 물었다. 그랬더니 너무 친절하게 어플을 켜서 직접 확인을 해주시며, 푸롱을 안간다고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다. 아니 이게 뭐야? 머릿속에는 대혼돈이 왔다. 일단 도착한 기차를 타고 송산으로 갔다. 그리고 결국 송산에서 내려, 송산의 역무원에게 길을 물었고, 그 곳에서 기차를 타고 푸롱으로 향했다.


이 때 길을 묻고 물으며 느낀 점은 하나같이 친절했다는 것이다. 귀찮아 하지 않고 심지어 역무원분은 직접 걸어오셔서 방향까지 알려주셨다. 처음 역무원분도 어디로 빨리 내려가라고 말씀해주셨고, 대만분은 어플을 키고 기차 도착시간까지 알려주셨다. 여행객에겐 이런 친절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친절은 그 나라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자. 또 한 번 생각을 헤본다.



18. 자연 그대로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우여곡절 끝에 푸롱에 도착했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자전거 대여집에서 전기자전거도 빌렸다. 빌리며 받은 지도를 켜고 바로 운전을 시작했다. 지도를 따라 푸롱 터널로 향하는데 세상에 너무 이쁜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8월에 지인을 만나 그런 대화를 했다. 그 분은 나중에 시골로 가서 살 예정이랬고, 나는 도시에서 살거라고 했다. 그리고 8월에 떠난 제주 여행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에 새삼스럽게 매료되었고, 10월 푸롱의 풍경을 보며 이런 삶 또한 행복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


드넓은 산맥과 푸르른 잎사귀들,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나. 어딜 돌아봐도 건물 하나 안보이는 푸롱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았다.


음악도 틀지 않고 온전히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탔더니 어느덧 푸롱 터널에 도착했다. 터널 밖에서 사진 찍는 것이 또 원칙이라고 하여 몇 장 찍고 터널 안으로 들어가 자전거를 또 움직였다. 생각보다 긴 터널 길이에 놀랐지만 영화 속 타임루프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달린 끝에 나온 푸롱의 바다. 제주도가 생각나기도 했던 바다와 절벽은 놀랍도록 좋았다. 


원체 바다를 좋아한다. 힘들면 바다 생각이 먼저 나서 강릉, 부산, 제주 등 일단 바다를 보러 떠난다. 바다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터널 끝에 등장한 바다는 좋은 기억을 또 선사해주었다. 바다를 보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드넓은 바다를 보면서 나의 고민을 파도에 흘려 보낸다. 


푸롱의 바다 | 열대나무와 잘 어울린다


19.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자전거를 타며 푸롱을 한 껏 즐기고 자전거를 반납했다. 디즈니 100주년을 맞아 푸롱해변에 모래조각으로 디즈니 영화를 새겼다는 것을 이미 알고 갔지만, 실제로 그 곳으로 가니 막상 또 귀찮아졌다. 그 앞에서 10분 가량 고민을 하다, 그래 푸롱 왔으니 보고 가자! 라는 생각으로 돈을 지불하고 해변으로 걸어갔다.


아니 왠 걸?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잘 해놓은 것이다. 물론 도착했을때는 전시의 마지막날이라 미키마우스의 귀 한 쪽이 날아갔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모래조각 전시회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실사와 비슷했다. 하나하나 구경을 하며 '우와'를 연발했다. 심지어 최근 개봉한 엘리멘탈도 있었고, 나의 최애 애니메이션인 인사이드아웃과 소울도 있었다. 샌들 사이로 들어오는 모래조각이 전혀 싫지 않았다. 모래 조각이야 빼면 되니까!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특히 여행이라면. 결국 감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얻어 영감이 생긴다. 지금까지 가지 않아서, 하지 않아서 아쉬웠던 일들이 더 많았다. 미키마우스의 한 쪽 귀가 없는 것을 본 것도 전시의 마지막날이기에 볼 수 있던 광경이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낭만적이야!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을 바꿔서 말하자. 기대 하지 않아서 더 많은 경험을 얻었다는 말로. 푸롱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날 휘감싸는 바람, 내 눈 앞에 펼쳐진 자연 그대로의 광경. 끝끝내 바라본 바다와 파도. 모래 사장에 새겨진 모래 조각들. 포카리스웨트 같았던 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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