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미 Dec 14. 2023

타이페이 스토리 6. 대만 청춘물 한가운데

오랜만에 느껴본 강렬한 감정에 대한 고찰

16. 마음 속으로만 가지고 있던 용기를 행동에 옮긴 사람에게 반하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안녕, 나의 소녀', '상견니', '아가능불회애니',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 '해길랍'

대만의 청춘 작품을 보며 여과없이 눈물을 흘리던 나는 영화의 낭만을 채우러 대만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청춘물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 물론 나 혼 자 서.



난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베이스기타도 배우고 싶고, 당장 퇴사를 하고 내 마음대로 삶을 누비며 살고 싶고, 칸 영화제에 직접 가보고 싶고, 패션 혹은 예술쪽으로 공부도 하고 싶은 열망도 크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근데 하고 싶은 것은 많기만 하고 계획은 짜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현실이 무서워서도 아니다. 내가 날 가로 막고 있다. 잘 알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이번 대만 여행 예스지투어를 하며 만난 가이드분은 모두가 알만한 회사에 들어갔지만 한국 특유의 정해진대로 흘러가야하는 분위기가 싫어, 대만으로 왔고 그렇게 가이드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반했던 포인트는 그 행동에 대한 강단력과 생기 있는 눈빛이었다. 한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의 안좋은 점에 점점 지쳐가던 나는 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런 용기는 어디서 나온걸까? 시작은 부러움이었다.


쿵. 하고 심장이 내려 앉던 순간은 정말 한순간에 찾아왔다. 예류로 향하던 버스 안, 대만에 왔으니 대만에서 사용하는 손가락 숫자 표기법을 알려주겠다고 손을 쫙 폈다. 그 순간 그냥 여과없이 빠져버렸다. 친구와 동생에게 카톡을 하는데, 다들 나의 설렘을 눈치챘는지 잘해보라는 식의 장난도 받았다. 그렇게 그 분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투어를 들었다.


스펀에 가서 풍등을 날릴 때였다. 그 분이 '그 시절 우리가...'라며 영화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듯 말하실 때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기 때문에 당당하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듯 날 보면서 말을 해주었다. 한 순간 빠진 사람이 그 눈빛에 반하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 쿵. 에서 쿵.쿵.으로 변해갔다. 스펀에 도착해 그에게 받은 풍등의 한 면에 '好,在一起‘를 새겼다. 그리고 풍등을 날리며 가족의 소원도 빌고, 내 사랑에 대한 염원도 넣었다. 내가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해주세요. 한번도 옮기지 못했던 그 행동을 옮기게 해주세요.


투어내내 최대한 앞으로 가서 그와 가까워지려고 했고, 차에서 하는 말을 놓칠세라 꼼꼼하게 들었다. 그렇게 예류, 스펀을 지나 지우펀에 도착을 했다. 지우펀에 도착했을 때, 오늘 날씨도 정말 좋고 사람도 많지 않아서 쾌적하게 볼 수 있으니 맘껏 보시라고 자유시간을 주었다. 괜히 길치인 척을 하고 싶었다. 머릿 속으론 '저 길 잘 모르는데, 알려주세요'라고 말하는 내가 있었지만, 현실의 나는 사람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지우펀 거리를 구경하는데, 그가 소개한 대왕오징어튀김집에서 대만맥주를 생맥주로 판다는 것까지 들은 나는 타는 마음과 더불어 여행의 설렘을 내리고자 맥주를 시켰다. 벌컥벌컥. 시원했고, 기분이 좋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붕붕 떠오른 마음을 안고 돌아다니는데 사단이 났다. 길을 잃어버렸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하필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가서 무서웠다. 이 길이 맞나? 구글맵을 켰는데 또 맞다고 뜬다. 걸어가면서 또 고민을 한다. 가이드에게 전화를 할까? 저 길 모르겠어요라고 말할까? 그 순간 내 앞에 같은 투어 일행분을 만났고 결국 둘이 같이 길을 찾아 약속 장소로 집합했다. 다행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아쉬웠다. 아니 이상하지 않다. 아쉬웠다. 목소리가 듣고 싶었고 그가 보고 싶었다.


버스에서 투어 정산을 하는데, 그가 날 보고 '어우 술 한잔 하셨네요'라고 말했다. 난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인데(술을 못 마시는건 아니다) 그 날 덥기도 했고 더 빨개진 것이다. 부끄러운 마음에 손풍기로 열을 식히지만 가라 앉지 않았다. 정산을 하며 '술 한 잔 하셨으니 천천히 하세요. 기다릴게요'라고 말하는데 괜히 그 말이 설렜다. 그리고 그의 손에 정산한 돈을 쥐어주고 창문에 머리를 박았다. 쿵.


짧았던 하루 투어가 끝나고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대만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던 그. 사람들이 하나둘 내렸고, 난 더 있고 싶어서 한 정류장을 더 갔다. 그리고 그가 기회를 주었다. '궁금하신 점 있으실까요?' 날 보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내가 한 질문은 '혹시 용산사 밤에 가면 위험하나요?'였다. 속내는 용산사 같이 가고 싶어요.

주변에 노숙자가 많으니 조심하면 좋지만 사람도 많으니 괜찮을 것이다. 다만 안심하지마라. 골목 잘못 들어가면 홍등가가 나오니 용산사만 보고 나오는 것을 추천한다. 그에게 들은 대답이었다. 


시먼딩역에 도착해 내리기 전까지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볼까, 엄마아빠 여행 가이드 추천해주고 싶다는 핑계대고 카톡 아이디라도 물어볼까 고민을 하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만 건넸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용산사로 가실거면 여기 지하철로 바로 가시면 되세요'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는 나에게 가이드로의 역할을 완벽히 해주었다. 그리고 난 그에게 반했다. 여과없이 이런 멋진 사람에게 흔들린다. 용산사를 보고, 화시지예 야시장을 구경하는 동안 마음이 붕붕 떠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에 몸과 마음이 두둥실 떠올랐다.


정말 웃긴 생각도 했다. 핸드폰 잃어버린 척하고 전화해볼까? 근데 난 아무것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풍등을 날리며 염원했던 마음도 그저 날아갔다. 어차피 하루 인연이라면, 그냥 철판깔고 행동에 옮겨볼걸. 왜 이런 사람 앞에만 서면 용기가 나지 않을까? 그 한마디가 뭐가 어려울까? 너무 어렵다. 돌아가도 용기를 내지 못했을 나란걸 알아서 서글프기도 하다. 마음이 너무 크면 들켜야 하는데 굳이 숨기려고 행동조차 안하는 내가 야속하다.


그 다음날 떠난 단수이에서도 그 사람이 자꾸 생각났다. 홍마오청을 보며 그가 설명해준 것들이 눈에 보였다. '말할 수 없는 비밀' 촬영지인 진리대학으로 향하던 중, 어떤 중학생 여자아이가 하교를 하고 내려오는데, 남자친구로 보이는 아이가 오토바이를 끌고 와 그 여자애에게 헬멧을 주고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갔다. 반얀트리 나무 아래, 오토바이를 탄 학생들은 둘의 세상으로 갔다. 와. 내가 매체로만 보던 청춘물을 여기서 보는구나. 지금 내 마음도 혼자 청춘물 찍고 있는데.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남기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한국에 와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이런 감정이 너무 오랜만이라 눈물이 흘렀다. 우리가 인연이라면 또 만나겠지요. 그런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또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보고 그가 생각나 눈물을 훔쳤다.


이 마음이 정리되기까지 약 3개월정도 걸렸다. 다시 대만행을 결정했을 때도 지우지 못한 그의 번호로 연락해서 '저 그때 투어했던 사람인데요, 시간 되시면 맥주 한 잔 해요'라고 말할까? 고민했지만, 그냥 내 심장을 쿵.하게 만들었던 그로 남겨두기로 생각했다. 


언젠가 이 글을 보고 본인인 거 같다고 생각든다면,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었구나 하고 웃어주시길. 근데요 저 진심으로 좋아했어요! 짧은 반나절 투어였지만 쿵. 쿵. 쿵. 계속 보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멋지게 살아주시길 저도 멋지게 살아서 대만 다시 갈게요!



이전 06화 타이페이 스토리 5. 왜 타이베이 커피는 맛있었던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