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탓인가 정말 맛있었던가 고찰에 대하여
구독자 세자리 단위 때부터 구독하던 유투버가 있다. 전직 승무원이신 유투버 와이님인데, 카페를 갈 때마다 라떼를 즐겨 마시는 것이다. 카페를 가면 아메리카노 아니면 바닐라라떼를 마셨는데, 와이님을 보고 라떼를 마시기 시작했다가 라떼의 맛에 빠져 버렸다. 구수한 커피를 좋아하던 내가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
차가 유명한 대만에서 커피에 대한 얘기를 쓰는 것도 재밌지 않은가? 놀랍게도 대만에 가서 차 한 잔을 안마셨다. 돌아다니며 마신 레몬그린티와 쩐주나이차는 양심상 제외한다. 다음에 대만을 가면 그 때는 차를 마셔보리라 결심해본다.
6월, 대만에 도착해서 처음 마셨던 커피는 타이페이 상견니 카페로 유명한 '好物spirit' 에서 마셨던 라떼다. 아직도 카페를 갈 때 걸었던 고즈넉한 골목과 카페 안에서 느껴지는 대만의 일요일 저녁 분위기가 잊혀지질 않는다. 전에도 말했듯이 일요일 저녁을 싫어하지만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이 때의 일요일은 행복했다. 그리고 여행의 첫 날이라는 치트키가 있었고.
드라마에 나온 자리는 따로 예약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는 상견니 카페를 갔다는 것만으로 만족을 했기 때문에 아무 자리나 잡고 앉아서 카페를 즐겼다. 아이스 라떼를 시켰고, 비 쫄딱 맞으며 돌아다닌 하루에 대한 보상이 아이스라떼로 싹 넘어가는 듯했다. 일요일 오후~저녁 사이라 사람도 별로 없었고, 창문을 바라보며 멍때리기도 하고, 구글맵을 켜서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 검색하기도 하고,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리기도 했다. 타이베이에서의 첫 커피, 좋았다.
무엇보다 대만 현지 분위기에 함께 녹아들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행복했다. 상견니 카페라서 갔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기억을 심어준 곳.
융캉제 근처의 'Dreamers' 카페에서 마신 라떼다. 라뜰리에 루커스 누가크래커를 오픈런해서 사고, 가빈병가에서 커피누가크래커를 사고 무거운걸 바리바리 들고 돌아다니다 첫 날 눈여겨 본 카페인 'Dreamers'로 들어갔다. 시간대가 아침이었기 때문에 카페 안에는 일을 하는 사람, 공부 하는 사람이 많았고 특히 2층은 전부 다 공부하는 분위기라 1층으로 내려왔다.
솔직히 말하면 커피는 맛있었지만 서비스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나중에 후기를 찾아보니 불친절하다는 후기들이 보여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커피는 참 맛있었단 말이지. 컵에 적혀 있는 문구도, 카페 벽에 적혀 있는 문구도 멋졌다. 꿈을 꾸는 사람이 마시는 커피라.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라고 적혀 있는 테이크아웃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 나는 절대 '나를' 포기하지 않아.
대만의 프랜차이즈 카페인 '루이자'에서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라떼를 마실까말까 고민을 했지만 너무 더웠던 날씨 덕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큰 사이즈를 골랐다. 무더운 날씨, 내리쬐는 햇빛을 피해 들어간 카페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불었고, 그 시원함을 느끼며 들이킨 아메리카노는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아니 왜 이렇게 맛있는거야? 근데 가격도 싸다고? 꿀꺽 꿀꺽 마셨다. 전에 삼시세끼 산촌편에서 오나라 배우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끄덕이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딱 그 모습이었다.
이 날 있었던 에피소드를 또 꺼내보자면, 예스지 투어를 가기 전 더위를 식히기 위해 들어온 곳이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카페에 앉아 있었고 나는 큰 테이블 한 자리에 앉았다. 누가봐도 여행객인 나는 대만 동전을 정리하고 예산을 정리했다. 다소 부산스러웠는데 다들 그냥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내 앞 커플은 서로를 바라보고 내 옆 분은 핸드폰을 하고 있고. 그리고 또 느꼈다. 아 이 자유로움.
루이자하면 또 빼먹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10월에 떠난 대만의 마지막날, 송산창의문화원구 산책을 하고 숙소로 돌아 오는 길이 아쉬워 숙소 근처에 있던 루이자커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만 문화에 맞게 간단한 에그머핀과 아이스 라떼를 시켜서 자리에 앉았다. 내 옆 분은 일을 하고 계셨다. 가만히 핸드폰을 만지다 '지금이 기회다!' 싶어 1분 거리 숙소로 달려가 챙겨온 로지텍 키보드를 꺼내고 메모장을 켰다.
그 때 적은 글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본다.
날 자유롭게 하는 이 곳이 좋다. 아시아에서 느낄 수 있는 이 자유가 좋다. 적당한 친절이 좋다. 그렇다고 난 이 사람들의 속내를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좋다. 후덥지근한 날씨도, 변덕스러운 기온도, 흐릿한 구름 사이 찔끔 보이다 마는 태양도. 그냥 좋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어렸을 때 대만 경험을 빨리 했다면, 지금의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또 달랐을 거라고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 곳에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열망은 아직도 있다. 그래서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회사 소속의 내가 아닌, 나로서 일을 하고 삶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원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그래야만 한다.
타이베이 미술관에 있던 카페의 커피. 남은 하루 빡세게 여행을 다니겠다고 호기롭게 결심하고 린안타이구춰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타이베이 미술관을 지나가는데, 카페가 보이길래 '옳다구나!'하고 라떼를 시켰다. 이 때 마신 커피도 참 맛있었다. 시간이 허락했다면(사실 시간은 허락했지만 내 조급함은 허락하지 않았지) 앉아서 마시고 싶었다.
미술관에 있는 카페들은 대부분 맛있고, 분위기가 좋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대부분 그랬던 기억이 있다. 분위기도 거진 비슷하다. 들려오는 대화들도 미술 작품에 대한 얘기들이 종종 들린다. 대만은 다양한 문화창의원구가 있다. 폐담배건물을 형태만 남기고 그대로 보존시켜 신진 작가들을 지원한다. 타이베이 미술관도 손꼽히기로 유명한 작품이 많이 실린다. 그런 이유인지 타이베이 미술관 근처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 실제로 내가 역에 도착했을 때 버스킹하던 사람도 보였고, 화구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나중에 내가 타이베이에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이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 전, 초등학생 때 피아노를 쳤는데, 선생님이 진지하게 음악해야할 손이라며 나에게 말을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올해 떠난 가족 여행에서 아빠가 처음으로 '예술을 시켰으면 어땠을까?'라는 말을 했다. 나 혼자 마음 속에 담고 있던 생각이었는데 아빠의 입을 통해 들으니 심장이 울컹였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곤 한다.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예술에 대한 열망이 넘쳐난다는 것을.
비록 타이베이 미술관은 가지 못했지만, 그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가보려고 한다. 예술인들이 그려내는 세계를 만끽하고 나와 미술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 느낌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 내가 부러워 하는 그들의 재능을 맘껏 받아들이겠다.
마지막으로 마신 커피는 숙소를 지나가면서 째려보던 카페였다. 꼭 이 곳은 가리! 하고 한국으로 떠나기 마지막 날, 짐을 일찍 챙겨 나와 커피를 마셨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곳은 대만의 갬성 카페였다.
대만에서 마셨던 커피 중 이 곳의 커피가 제일 맛있었다. 적당한 고소함과 살짝의 산미, 그리고 우유의 조화가 정말 끝내줬다. 홀짝 홀짝 마시며 대만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대만 사람들의 출근길, 맑은 날씨, 타이베이 메인역, 첫 날 도착했을 때 느꼈던 대만의 느낌을 되살려 보았다. 그리고 느꼈다. 난 또 이 곳에 오겠지. 아쉬움은 남지만 미련은 없다. 또 오면 되니까.
정말 커피가 맛있었을까, 분위기에 취했었을까?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지만 둘 다 좋았다고 생각한다. 차의 본고장인 대만에서 커피에 반해서 올 줄이야. 또 마시러 가야지. 분위기 한 입, 커피 한 모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