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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 Jan 25. 2024

타이페이 스토리 8. 타이베이의 밤은 밝다

입 안 가득 향이 멤돌던 카발란 위스키, 맘껏 즐긴 대만의 펍

10월, 두번째로 떠난 대만 여행의 테마는 '술'이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대만은 술문화가 그렇게 발달한 편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대만에서 술을 마시겠다는 결심은 '카발란위스키바'를 꼭 가야겠다는 계획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술의, 술을 위한, 술에 의한 계획을 세운다.


20. 서울 : 한강에서 치맥하자! 타이베이 : 다다오청에서 맥주마시자!


6월에 떠난 대만 여행 후 한국에 와서 '대만병'을 앓았다. 전부터 봐야지하고 찜해놓은 <투 씨티 투 걸스>를 보고, 다음 여행은 꼭 디화제와 다다오청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아쉽게도 내가 대만에 갔던 때는 날이 흐려서 다다오청의 노을이라거나 환한 하늘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현지의 분위기가 나서 즐거웠다.


한강은 돗자리를 펴고 술을 마시는 분위기라면 다다오청은 컨테이너 박스로 둘러쌓여 푸드트럭처럼 되어있고, 펍과 같은 분위기로 테이블이 즐비해있다. 원하는 자리에 앉아 푸드트럭에 가서 술과 간단하게 먹을 안주를 사서 즐기면 된다. 가장 인기가 많은 자리는 아무래도 컨테이너 위다. 다다오청의 전망을 뻥 뚫리게 볼 수 있으며, 자리가 많지 않아 편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20분 정도 기다렸다가 자리가 비는 것을 확인하고 앉았다.


멋진 다다오청의 야경 건너편은 단수이


시원한(조금은 추운) 바람과 맥주 한 잔(사실 두 잔)


혼자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진찍고 야경도 찍으며 놀고, 계획도 한번 더 점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맥주를 마시기 전에 저녁을 먹었던터라 배가 고프진 않아서 맥주 두 잔을 천천히 마셨다. 지금도 그 때 불던 바람이 생생하다. 대만의 10월은 우리나라의 늦여름~초가을과 비슷한데, 내가 갔던 때는 좀 추워서 가디건을 입고 있었지만 강가인지라 너무 추운 것이다. 바람이 하도 날려서 머리가 산발이 되었지만 그 멋진 풍경을 즐기겠다고 꿋꿋하게 앉아 야경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다. 


이 날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현지인들이었다. 여행을 다니며 관광지 위주로 다녔는데, 현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더욱 설렜다. 계획에 있었지만 그 예상보다 더 좋은 곳의 기억은 오래도록 감각이 남아 있다. 시원하지만 추웠던 그 바람과 세차게 흩날리던 머리카락, 조금씩 거품이 빠져가는 맥주까지. 그 날의 저녁은 완벽했다.



21. 카발란 위스키를 마실 결심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이지만, 와인이나 위스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맛있는 술을 마시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카발란 위스키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사람들이 극찬을 하는걸까? 여행 계획을 세우고 구글맵으로 카발란위스키바를 예약했다. 


약속된 시간이 되고 카발란위스키바의 문을 열고 엄청난 환대를 받으며 바 테이블에 착석을 했다. 위스키바에 혼자 간 것은 처음이라 바텐더가 내 앞에 있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내 머릿 속에 상상하던 그림은 미국 드라마처럼 여유롭게 '한 잔 주세요'라고 말하고 스몰톡을 하는 거였는데, 현실은 술 추천을 받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고, 파워 E인 나도 어색해서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양상이었다.


드디어 술이 도착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바텐더의 설명을 들으며 한 모금 머금은 그 순간,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 향을 가만히 머금으면서 위스키를 즐겼다. 아, 이래서 다들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하는건가? 코끝까지 스치던 그 향을 다시 한 번 더 머금었다.


 

위스키바의 돼지고기 덮밥


사실 이 날은 푸롱에서 자전거를 타는 날이었다. 예상 시간과 비슷하게 타이베이에 도착했지만,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았고 심지어 우버도 잡히지 않아 길에서 30분을 허비하는 바람에 저녁을 아예 먹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요일 저녁이었기 때문에 쉬는 가게도 많이 보였고, 시간이 부족해 먹고 싶었던 훠궈를 먹지 못해 쫄쫄 굶고 있던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돼지고기 덮밥을 시켰는데, 케찹 데코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배고팠던지라 일단 배를 먼저 채우고 중간 중간 위스키를 마셨는데 진짜 너무 행복했다. 아니 밥이랑 위스키랑 어울릴 수가 있나요? 카발란이기에 가능한건가? 상상이 안가는 조합이지만 참 행복했다. 어느정도 배도 채워졌고 술도 들어갔겠다 긴장이 좀 풀려 앞에 있는 바텐더에게 스몰톡을 건넸다.


원래 영어로 대화하다가 중국어로 대화하니까 중국어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서 여행 얘기부터 시작해서 카발란 위스키바에 상 탄 사람이 적혀있길래 누군지 맞추라는 얘기까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가야할 타이밍인 거 같아 일어서려고 하던 찰나, 나에게 서비스로 한잔을 더 주었다. 차가운 잔에 담겨 나온 카발란 위스키. 마지막 한 모금은 시원하게 입에 털었다.


카발란 위스키는 나에게 위스키의 맛을 눈뜨게 해준 술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위스키바에 가서 즐겼던 경험을 주었다. 다음에 대만에 가면 카발란 위스키를 면세점에서 꼭 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왜 헤어질 결심에서 이 술을 마셨고 이 술을 선택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참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러니 대만에 가면 꼭 카발란 위스키바에 가서 즐겨보시길. 위스키의 신세계를 맛보시길!



22. 대만 gen Z 사이에 있는 밀레니얼. 대만 펍 이야기


위스키바에서 나와 타이베이101타워 쪽으로 이동했다. 이 곳이 재밌는 펍들이 많다 그래서 부리나케 우버를 잡고 갔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따로 있었지만, 블로그의 후기를 보고 펍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펍에 도착했을 때는 안의 자리는 만석이었고 밖에서 술을 마시며 함께 즐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혼자 왔기 때문에 혼자 자리에 앉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근데 너무 재미나게도 이 곳의 디제이가 이하이랑 박재범 노래를 많이 틀었다. 아 뉴진스도. 그 노래들이 믹싱이 되니까 어찌나 신나던지. 흥얼거리며 몸 흔들고 있으니까 대만의 Gen Z들이 막 춤을 추는 것이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재밌다고? 


사실 내가 생각한 그림은 'hello, stranger' 모드로 대만 사람들과 인스타그램 친구를 맺고 인연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슬프게도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목표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대만 여행에는 꼭 대만 친구를 만들어서 한국에 오리. 여튼 혼자 놀고 있었지만 혼자 노는게 아니었다. 그들이 노는 모습도 보고 대화하는 모습도 보면서 왜이리 신났는지 모르겠다. 아마 오랜만에 느껴보는 경험이지 않았을까싶다.


예전에 친구들과 펍에 가서 음악을 듣고 몸을 살랑살랑 움직이며 놀기도 했고 여행에 가서 그렇게 논 적도 많았는데, 코로나도 있었고 한 해 한 해 넘어갈수록 조용한 곳을 찾게 되었던 거 같다. 언젠가 한 번 친구들에게 우리 오랜만에 펍가자! 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우리가 찾는 곳은 조용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우리만의 아지트였다. 결코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대만에서 정말 오랜만에 예전처럼 즐겼을뿐.


밖에서 한 모금씩 마시며 즐기던 맥주


흥이 오를대로 오른 나는 안으로 들어가 칵테일을 한 잔 더 시키고 놀았다. 그런데 내 앞에 젠더리스의 대만 친구가 있었다. 그렇다.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더욱 개방된 나라이다. 이미 동성화 결혼은 법제화 되었고, 이 곳은 퀴어프렌들리한 나라다. 그 친구와 눈이 마주쳤고 서로 함께 춤을 추고 내가 그 친구에게 환호를 했더니 나에게 팔을 뻗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적는 순간에도 웃음이 나온다. 난 그에게 환호를 날렸다.


Hello, Stranger!


오랜만에 즐겼던 참으로 신났던 경험. 재밌게 놀고 숙소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바로 뻗었다. 취기도 없었고 생각보다 피곤하지도 않았지만 즐거운 경험 덕분인지 그냥 뻗어 버렸다. 다음 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 잡았다. 위스키-맥주-칵테일 2잔의 여파는 생각보다 강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저 물을 벌컥 벌컥 마시며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뿐.


낯선 곳에서 만난 예전의 흥을 즐기던 내 모습. 자유롭게 놀던 내 모습. 드라마에서만 보던 장면이 나의 장면이 된 내 모습. 대만에서 즐긴 술들은 나에게 새로운 모습들을 남겼다. 그중 가장 최고를 뽑으라면 자유였다. 술을 많이 마시거나 매일 마시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되지만 가끔 찾아오는 취기는 나를 해방시키곤 한다. 영화 '어나더라이프'에서 술을 즐기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이 주인공은 오히려 약간의 취기로 인생을 살아간다. 굳이 술에 취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나를 조금 놓아줄 무언가는 필요하다.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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