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편 조선 (3) #3

핵심 문자 자료들 (3/6)

by 잡동산이

그리하여, 무-제는 다시 사신을 보내어 이로움을 가지지 못한 상황을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사기 조선열전은 무-제가 보낸 사신 위산이 군사들을 등에 업고 가서는 우거에게 무-제의 뜻을 며[A-(9):①-⑤], 그리하여 우거가 2명 장군들 대신 산을 믿고 항복하기로 하였다[A-(9):⑥-⑮]고 적었습니다. 이어 왕태자를 보내 말들과 군대를 먹일 것들을 바치도록 하였다[A-(9):⑯-⑱]고 적었으니, 더는 군사적인 충돌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A-(9) 사기 조선열전: (원봉 02년 가을) ① 무-제[天子]는 ② 2(명) 장군들[將]이 아직 이로움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고 ● 이어 ③ 위산衛山을 사신으로 보내니 ● (위산이) ④ 군사들의 위엄에 이어 ⑤ 가서 우거를 깨우쳤다. ⑥ 우거가 ⑦ 사신[使者](=위산)을 보고 ⑧ 머리를 숙여 ⑨ 사과하고 ● (말하기를) "(내가) 바라기를, ⑩ 항복하였으면, 하였으며 ● 두려워하기를, ⑪ 2(명) 장군들이 ⑫ 속여 나[臣]를 속여 죽일까, 하였는데 ⑬ 이제 ⑭ 믿을 물건[信節]을 보았다. ● 청하기를, ⑮ 따르고 항복하였으면, 한다."라고 하였다. ⑯ (왕)태자太子를 보내니 ● (왕태자가) ⑰ (한의 군대가 있는 곳에) 들어가 사과하고 ⑱ 말들 5,000마리[匹] 그리고 군대를 먹일[饋] 먹을 것들[糧]을 바치기로[獻] 하였다. (其秋)①天子②爲兩將未有利●乃③使衛山●④因兵威⑤往諭右渠⑥右渠⑦見使者⑧頓首⑨謝●願⑩降●恐⑪兩將⑫詐殺臣⑬今⑭見信節●請⑮服降⑯遣太子●⑰入謝⑱獻馬五千匹及饋軍糧​


이어 사기 조선열전은, 왕태자가 거느린, 무리 10,000명 남짓이 패-수 건너 순체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였다[A-(10):①-③]고 적었습니다. 순체는 아직 패-수의 서쪽에서 싸우고 있었으니 이 때 건너간 패-수는 취-수가 아니라 쓰인 그대로의 패-수입니다. 이어 사기 조선열전은, 위산과 순체가 그들을 의심하여 무기를 놓고 오도록 하[A-(10):④-⑩], 왕태자는 그들이 속여 죽이려하는 것이라고 의심하여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갔다[A-(10):⑪-⑮]고 적었습니다.

A-(10) 사기 조선열전: (원봉 02년 가을) ① (물건들을 바칠) 사람들 무리[人衆] 10,000(명) 남짓이 ② 무기들을 지니고 ● 바야흐로 ③ 패-수를 건너려고 하였다. ④ 사신(=위산) 그리고 좌-장군이 ● 의심하여, ⑤ 그들[其]이 ⑥ 다른 일[變]을 하려는가, 하였다. ⑦ (왕)태자에게 일러 ● (말하기를) "(너는) 이미 ⑧ 따르고 항복하였으니 ● 마땅히 ⑨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 (사람들이) ⑩ 무기들을 지니지 말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⑪ (왕)태자가 ● 또한 의심하여, ⑫ 사신, 좌-장군이 ⑬ 속여 그들[之](= 사람들)을 죽이려는가, 하였으며 ● 이윽고 ⑭ 패-수를 건너지 않고 ● 다시 ⑮ (사람들을) 이끌고 돌아갔다. (其秋)①人衆萬餘②持兵●方③渡浿水​④使者及左將軍●疑⑤其⑥爲變⑦謂太子●已⑧服降●宜⑨命人●⑩毋持兵⑪太子●亦疑⑫使者左將軍⑬詐殺之●遂⑭不渡浿水●復⑮引歸


과연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요? 조선이 보낸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갔던 것은, 앞서 섭하가 자신을 보내주던 조선 사람들 죽이도록 한 일을 알아 한의 의도를 의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게 무기들을 놓도록 하면 충분히 의심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리하였으니, 양복 또는 순체가 아직 갖지 못한 이로움을 가지는 상황이 되도록 시간을 벌되 섭하가 그리하였듯 싸움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무-제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리하여 양복과 순체의 군사들 다시 조선을 칠 수 있게 되었지만, 사기 조선열전은 위산이 돌아가 명령을 따랐음을 알리자[A-(11):①-②] 무-제가 위산을 죽였다[A-(11):③-④]고 적었습니다. 한의 군대들이 회복되도록 하는 공을 세운 위산이 무-제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무-제의 뜻이 실은 우거를 항복시키록 하는 것이 아니었 때문에 무-제에게 정치적 부담이 고 있는 그 뜻을 는 사람이 없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A-(11) 사기 조선열전: (원봉 02년 가을) ① (위)산山이 ② 돌아가 무-제[天子]에게 알렸다[報]. ③ 무-제[天子]가 ④ (위)산을 죽였다[誅]. (其秋)①山②還報天子③天子④誅山




여하튼, 이어 사기 조선열전은 순체가 패-수 위의 군대를 깨트렸다[A-(12):①-②]고 적었으며, 왕검-성 아래로 나아가 검-성 서북쪽을 에워쌌다[A-(12):③-④]고 적었고, 양복이 순체를 만나고서[A-(12):⑤-⑥] 모은 군사들이 왕검-성 남쪽에 머물도록 하였다[A-(12):⑦]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우거가 왕검-성을 굳게 지켰다[A-(12):⑧-⑨]고 또한 적었습니다.


A-(12) 사기 조선열전: (원봉 02년 가을) ① 좌-장군이 ② 패-수 위의 군대를 깨트렸으며, ● 이어 ③ 나아가 (왕검-)성城 아래에 이르러 ④ 그(= 왕검-성의) 서북쪽을 에워쌌다. ⑤ 누선(-장군)(= 양복) ● 또한 ⑥ 가서 (좌-장군과) 모이고서 ⑦ (왕검-)성의 남쪽에 머물렀다. ⑧ 우거右渠가 ● 이윽고 단단히 ⑨ (왕검-)성을 지켰다. ⑩ 여러 달을 지냈다. ⑪ 아직(= 여전히) (왕검-성을) 떨어뜨릴[下] 수 없었다. (元封二年秋)①左將軍②破浿水上軍●乃③前至城下④圍其西北⑤樓船●亦⑥往會⑦居城南​⑧右渠●遂堅⑨守城⑩數月⑪未能下


사기 조선열전은 여러 달을 지내며[A-(12):⑩] 왕검-성을 떨어뜨릴 수 없었다[A-(12):⑪] - 왕검-성이 한漢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 고 적었습니다. 이러한 구절들은 모두 원봉 02년 가을이라는 구절에 이어 적혀있으니, 보다 앞서 일어난 일들은 가을에 해당하는 7-9월 가운데 마지막인 9월에서 여러 달 - 최소한 두 달 이상 앞선 7월이나 보다 앞의 시점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서 두 달 이상이 지나순체와 양복은 왕검-성을 깨트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급한 쪽은 한漢이 아니라 조선이 되었습니다. 한과 조선의 군대들이 왕검-성에서 직접 마주하고 싸우게 되었기에, 조선 군대가 앞서 험한 곳을 막아 한 군대가 오는 것을 방해할 때보다 많은 물건들, 먹을 것들이 계속해서 쓰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성 하나에 자리잡아 에워쌓여 있기에 물건들, 먹을 것들을 더 들여와 채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풀어낼 방법은 아직 남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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