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편 조선 (3) #11

조선과 그 주변 (5/5)

by 잡동산이

앞서 한서 식화지가 적은 것처럼 예, 맥과 조선 사이를 뚫어내고 그리하여 사기 평준서가 적은 것처럼 조선을 없앤 일[滅]은, 모두 팽오라는 사람이 샀던[賈] - 예 사람들, 맥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 이루어내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팽오가 그리하였던 것은 사기 화식열전이 적은 것처럼 진-번을 비롯하여 예, 맥과 조선에서 얻어지는 이로움[K-2:②]을 얻어내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K-2 사기 화식열전: ① (상곡-군에서 요동-군에 이르는 땅의) 동쪽은 ② 예穢, 맥貉, 조선朝鮮, 진-번[眞-番]의 이로움[利]과 얽혀있었다. ①東②綰穢貉朝鮮眞番之利


이 이로움은 본래 진-번 사람들이 있던 곳 북쪽의 땅 - 예, 맥, 조선 사람들이 구려 사람들과 더불어 모여 있던 곳 가까이 군사들을 거느린 요동-군이 얻어낸 것입니다. 한의 요동-태수가 위만과 손잡아 위만이 그들에게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면서 이 이로움은 위만을 통하여 요동-군에 오고가게 되었지만, 한과 위만의 사이가 달라지고 흉노 또한 그곳과 서쪽까지의 땅을 침범하면서 이로움을 한이 얻어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리하던 상황은 우거가 왕이 되면서 진-번에서 우두머리 노릇하던 사람들이, 또한 조선에 있던 사람들이 조선-상을 따라 떠나면서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줄어진 진-번으로 북쪽의 구려 무리가 들어가 머물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적던 진-번에는 사람들이 적었고 팽오가 그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 꾀었습니다.


그리고는, 더 많은 이로움을 얻어내기 위하여 그곳에서 동쪽으로 가서 그 서북쪽 이르고 다시 동쪽으로 가서는 돌아 남쪽으로 가서 위만을 따르기로 하였던 예와 그 남쪽, 보다 앞서 준을 따랐던 예에 이르는 길을 열도록 하였습니다. 예는 위만이 보낸 진-번 -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진 사람들 - 이 침범하자 조선을 따랐으나 이제는 조선과 한이 맞서는 상황이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남쪽과 북쪽의 예가 손잡고는 모두 조선에 등돌리고 한漢을 따르기로 하였으니, 그 우두머리가 앞서 적은 예-군 남려였습니다. 이리하여 예가 조선에 등돌리도록 한 것을 앞서 일러 팽오가 조선을 없앴다[滅]고 적었는데, 결국 모두 이로움[利]을 얻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팽오에게는 이로움을 가져왔지만 한漢에게는 그렇지 못하였으니 그 땅을 무-제가 창해-군으로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땅에 이르는 길은 한의 것이 되었고, 길잡이 노릇하는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 그리고 앞서부터 요동-군을 침범하던 흉노를 막을 군사들에 더하여 예에 오고가는 길을 - 식신에게서 - 지켜낼 군사들을 두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쓰임새를 한서 식화지가 적었습니다. 먼저, 서남쪽 변방 사람들에게 오고갔다[L-2:①-②]고 적고는,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L-2:③-④] 그들을 위한 먹거리를 멀리 옮기며 또한 먹거리가 많이 들었고[L-2:⑤-⑧] 또한 변방 사람들에게 물건들을 주어 가지도록 하였다[L-2:⑨-⑩]고 적었습니다. 그 뒤에는 동쪽으로 가서 창해-군을 두는데[L-2:⑪-⑫] 그 무리에게 쓴 것이 남쪽 변방 사람들에게 쓴 것과 비슷했다[L-2:⑬-⑭]고 적었습니다.


L-2 한서 식화지: ① (이) 때 ● 또한 ② 서남쪽 변방 사람들에게 오고갔다[通]. ③ 길을 만든 이들은 ④ 수만 명[人]이었는데 ● (수만 명이) ⑤ 1,000리를 가며 ⑥ 먹거리들[餽饟]을 지고 메어[負擔] ⑦ 100말(= 10말/종 × 10종鍾 = 1800L) 남짓을 거느려서 ⑧ 1섬[石](= 120L)을 이르도록 하였고, ⑨ 값진 물건들[幣]을 (그곳의) 공邛, 박僰에게 흩어 ● (그들이) ⑩ 그것[之](= 물건들)을 거두도록 하였다 ... ⑪ 동쪽으로 가서 ⑫ 창해-군을 두었는데 ⑬ (동쪽 변방) 사람들 무리에 쓰는 것이 ⑭ 남쪽 변방 사람들과(= 남쪽 변방 사람들 무리에게 들이는 돈과) 비슷하였다. ①時●又②通西南夷③道作者④數萬人●⑤千里⑥負擔餽饟⑦率十餘鍾⑧致一石⑨散幣於邛僰●⑩以輯之...⑪東⑫置滄海郡⑬人徒之費⑭疑於南夷


한은, 길이 시작되는 연燕 땅과 옛날 발을 따르는 조선이 있을 때부터 이 땅의 이로움이 오고가던 제齊로부터 그것들을 끌어왔는데, 멀리 조선을 돌아 오고가는 길이기에 이로움에 비해 많은 것이 필요했고, 그것은 연과 제에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불만을 가지니, 사기 평준서와 한서 식화지, 연과 제가 흩어졌고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하였다[K:④-⑥ = L:④-⑥]고 적었습니다.


그리하여 한은 창해-군을 오래 두지 못하고 없애야 했으니, 한서 무제기 03년 봄 기사는 창해-군을 없앴다[]고 적었고 후한서 동이열전 예편은 몇 해를 지내고서 창해-군을 없앴다[-]고 적었습니다. 이 시기는 MC-125/01[+3)입니다.


곧 예, 맥, 조선을 통하여 얻어지는 이로움은 더이상 이로움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앞서 사기 화식열전이 예, 맥, 조선 그리고 진-번의 이로움이라고 적은 것들을 한서 지리지는 진-번의 이로움[L-3:②]이라고 달리 적었습니다.


한서 무제기: (원삭) 03년 봄 ① 창해-군을 없앴다. (元朔)三年春①罷蒼海郡
후한서 동이열전 예편: ① 몇 해를 지내고 ● 이어 ② (창해-군을) 없앴다. ①數年●乃②罷
한서 지리지: ① (상곡-군에서 요동-군에 이르는 땅의) 동쪽으로 가서 ② 진번眞番의 이로움[利]을 샀다. ①東②賈眞番之利


그러나 예를 통해 얻어지는 이로움을 여전히 바라고 있던 사람들은, 연과 제에 주는 부담은 없애고 이로움을 얻어내기 위한 방법을 떠올렸으니 바로 숙신과의 사이, 북쪽에 구려와 예, 맥, 조선 사람들을 두어 숙신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길 - 바로 조선을 통하는 길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바램은 앞서 사기 율서가 적었던 바, 신하 노릇을 하지 않는다고 꺼려하던 조선과 남월을 차지하고자 하던 사람들의 바램이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였으나 창해-군을 없앤 뒤로 곧 흉노와의 전쟁이 시작되어 계속되었고, 곽거병과 위청이 큰 승리를 거둔 뒤에 일단 멈추었지만 한은 한동안 전쟁을 멈추고 내부를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 일이 끝나자 군사들을 보내 동월을 패배시키고 남월을 없고서 9개 군들로 하였는데, 한서 무제기 원정 06년 봄 기사가 이 일[①-②]을 적었습니다. 해당하는 시기는 MC-110/01[+3)입니다.


한서 무제기: (원정 06년 봄) ● 이윽고 ① 월越의 땅을 바로잡았으며 ② 남해(-군)[南海], 창오(-군)[蒼梧], 울림(-군)[鬱林], 합포(-군)[合浦], 교지(-군)[交阯], 구진(-군)[九眞], 일남(-군)[日南], 주애(-군)[珠崖], 담이-군[儋耳-郡]으로 하였다. (元鼎六年春)●遂①定越地②以爲南海蒼梧鬱林合浦交阯九眞日南珠崖儋耳郡


그리하여 른 주변을 정리하고 나서는 마침내 우거를 쳐서 조선과 그 주변을 모두 따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서는 그곳의 여러 무리 이름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4개 군들을 만드니 낙랑-군, 진-번-군, 현토-군, 임둔-군이 그것들입니다.


낙랑-군은 조선 사람들이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패-수 남쪽의 땅이니 여기에 조선이라는 이름의 현이 있었습니다, 진-번-군은 본래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진 사람들이 보다 남쪽의 낙랑 사람들이 역-계-경을 따라 떠나기에 앞서 떠나고 그곳에 구려 사람들이 들어와 머물던 땅이니, 여기에 고구려라는 이름의 현을 두었습니다.


현토-군은 예가 있던 조선 동북쪽의 땅입니다. 현토玄菟란 예 사람들이 식신에게서 갈라져 기-자를 따른 뒤에 머물던 아사달 - '하+된소리/받침+도'라는 옛 소리를 가져 달리 험독 - '허 + 된소리/받침+도'이라고도 적힌 땅 이름을, 다시 조선-왕을 따라 움직이고 다시 떠나 현재의 한반도 동쪽 긴 산줄기 너머 바닷가에 머무르며 그곳 사람들이 그 소리를 적는 글자로 적은 것입니다.


그리고 임둔-군은 나머지 사람들이 있어 머물던 땅입니다. 패-수라는 물줄기의 이름 패浿에 임臨를 보태어 임패臨浿라고 현을 이르 것을 통해 보면, 임둔臨屯의 둔屯은 장소고 또한 그곳 가까이 있던 물줄기를 이르는 것입니다. 앞서 우거를 따르던 상들[相] 가운데 이-계-상[尼-谿-相]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계谿는 물줄기를 이르는 글자고, 둔屯을 니尼라는 글자고 잘못 적은 것입니다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만, 예와 부여夫餘 사이에는 여러 가지 더 살펴야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임둔-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뒤에 부여에 대해 살펴보면서 낙랑-군의 변화와 함께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약간 부족하게나마 2장 1편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2편에서는 준이 위만에게 패배하고 남쪽으로 넘어간 시기에서부터 준과 그 후손들의 이야기를 자료들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흉노의 일도 그렇고 많은 부분을 제외하였는데.. 있으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들이 있어서, 그대로 둘 지 추가할지 조금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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