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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나와 곡물빵(Roggenbrot)

[독일제빵사(Bäcker)_이현수]

by 김영준


동양인들의 주식은 쌀밥이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우리에게는 빵이 식사라는 인식보다는 다과나 디저트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유럽에서 빵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사건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중요한 상징이다.

유럽 역사 속에서 빵은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민중의 불만을 표출하는 도구로, 러시아 혁명 때는 경제적 불평등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또한 유럽 대공황 시절, 빵 한 덩어리로 하루를 버텼던 가난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심지어 전쟁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동아시아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민의 쌀 차별, 일제 강점기의 쌀 수탈, 한국 전쟁 당시의 쌀 부족과 같은 문제들이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유럽의 빵 역사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역사를 체험한 유럽에서는, '빵'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존중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요?

독일은 1971년에 '독일 제빵법(BrotG)'을 제정하여 빵에 대한 품질 기준을 엄격히 정했습니다. 제빵에 사용되는 재료는 밀가루, 효모, 소금 등 고품질의 자연 재료를 사용해야 하며, 전통적인 제빵 기법을 유지하고 기계적인 조작보다 수작업을 중심으로 한 자연 발효를 권장합니다.

또한, 제빵사는 공식 인증을 받은 후에도 매년 규정된 교육과시험을 통해 재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열거하기 너무 많은 관계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해당사이트에서 확인 바랍니다.
www.bäckerhandwerk. de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독일에서 현업으로 활동하는 '이현수' 씨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의 경험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청춘을 어떻게 활용하고 소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좋은 귀감이 될 것입니다.




새벽부터 이른 아침 시간, 분주한 독일 제빵소 풍경




유럽 특유의 잿빛 색감과 뿌연 분내가 공간을 채운 제빵소. 곳곳에 남은 그을림의 흔적이 더해져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에 취하게 되는 그 찰나, 사전 회의 때 그렸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깔끔하고 단정한 청년이 문 앞에서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아침이 빵 소비의 최적의 시간이기 때문인지, 이른 시각에도 직원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현수 씨와 사장님의 호의적인 안내를 받으며 내부와 설비들을 둘러보는 동안, 우리도 덩달아 긴장감 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게 되었다. 그들의 호의가 '현수'씨의 평판 때문인지, 이방인에 대한 친절인지, 카메라가 주는 경계심 때문인지, 그저 손님에 대한 호의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시아인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외딴곳에서, 투박하지만 진한 곡물향이 느껴지는 독일만의 빵을 배우며 Bäcker Meister 가 되기 위해 청춘의 때에 온몸을 내던진 '현수'씨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 짧게 본인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나이는 95년 만으로 29살이고 이제 올해로 아우스빌둥 3년 차에 접어든 독일 Brot & Sinne GmbH에서 제빵사로 일하고 있는 이현수라고 합니다.



| 제빵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는 게 손을 통해 결과가 나올 때 가장 행복했습니다.

여러 가지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요리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빵을 접한 순간부터 빵에 더 매력을 느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제빵 학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제과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학교를 한국관광대학 호텔제빵학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독일로 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까요?



한국에서부터 제과보다는 제빵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습니다.

한국은 말하자면 업계 상황상 재고 쪽을 많이 치중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 환경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제가 일했던 곳의 공통적인 특징은 예를 들어 어떤 파트에 5명이 들어가 일을 하는데 1명이 퇴사를 하게 되면 항상 인원충원이 아니라 인원동결을 해버렸습니다.

또 매번 들려오는 '재료비 아껴라', '오버타임 해야 된다' 이런 소리들을 겪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다른 빵집들도 마찬가지겠지라는 마음을 자연스레 가지면서 체념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사람들이 제가 생각하는 진짜 빵을 사 먹는 것보다는 디저트를 많이 먹고 그러니까 하고 싶지 않은 걸 약간 억지로 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불안해져 가고 이 이상 나이가 더 들게 되면 새로운 시작을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생겼어요.

빵에 관해 일을 하면서 내 꿈에 관해 '발전'이 아닌 그 풍토에 '동화'가 되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 자연스레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약간 개인적인 생각인데 일부는 빵을 그냥 단맛으로 먹으려고 하는 느낌이 있어가지고 약간 이건 빵의 근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있고요. 프랑스로 갈려고도 알아봤지만 프랑스는 사실 빵보다는 디저트죠.

빵은 그렇게 발달 안 된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빵의 기준이 독일이 더 가까운 것 같아서 자연스레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치기 어리지만 제과에 익숙해진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저의 실력으로 곡물빵의 매력을 알리고 싶습니다



3년 동안 제빵 교육 지도 및 적극적으로 신제품 출품을 권유하신다는 사장님




| 본인만의 빵에 대한 취향과 기준선은 무엇일까요?



독일에서 제가 사랑하는 빵의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긴 한데 Dinkel krusti라는 게 있어요. 재료가 밀, 물, 소금 그리고 이스트가 들어가고 호박씨, 해바라기 씨, 퀴노아를 이용해서 뻥튀기처럼 수분 없이 튀긴 게 있어요. 딱 씹으면 그 구수한 내가 확 퍼져요. 약간 백반집 가면 보통 밥을 솥에다가 해주잖아요.

밥 다 먹고 누룽지 냄새가 나잖아요. 그 비슷하고 익숙한 냄새가 이 빵에서 퍼져요. 이게 누룽지 비슷한 익숙한 냄새가 계속 코 끝에 맴돌아요. 특히 물 부으면 그 냄새가 처음에 쫙하면서 한번 퍼지거든요. 저는 곡물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빵을 사랑합니다. 정말 매력적이에요. 되게 신기해서 사람들에게 선물할 때 항상 이 빵을 삽니다.




유럽에서 재배되는 천연곡물만을 이용한 독일 전통빵




저는 빵이 가장 빵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 중에 하나가 곡물향과 발효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에서는 그냥 밀가루라고 부르는데 여기는 독일어로 하면 멜(Mehl)이 있고 슈로트(Schrot)가 있고 아니면 그냥 밀알 있잖아요. 밀알을 익혀서도 써요.

그리고 그거를 비율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도 또 빵 맛이 다르고 근데 거기다가 싸우더를 첨가를 했을 때 싸우더 오드 몇 퍼센트 넣었냐에 따라 또 맛이 다 달라요.

약간 철학이라는 게 부끄럽긴 한데 빵이 빵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빵 다울 때는 다른 동물이나 다른 식물에서 나온 재료들 말고 순수하게 밀이라는 범주에 있는 재료들로만 이렇게 맛있게 구워진 빵이 빵이라 생각을 해요.

근데 그 재료들을 가지고 어떻게 잘 배합하고 발효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앞으로의 저의 숙제인 거죠.




| 근무환경이나 회사의 장점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좋아요. 사적인 영역은 전혀 문제를 삼지 않아요. 한 가지만 제외한다면요.

여기 직원들과 사장님은 화를 내는 게 빵의 품질 문제 때문에만 화내지 그 외의 거에는 화를 안 내요.

제 스타일은 존중해 주시돼 품질에 관해서는 일절 양보를 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대표님 마인드가 한 파트에서 한 분야만 일을 지시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반죽이에요. 반죽, 발효과정, 배합과정, 베이크 등등 자기가 키우는 Auszubildende(수습생)들은 다 할 수 있어야 된다 라는 생각이 되게 강하세요.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최고의 환경인 것 같아요.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배우는 거고 신제품 만들 때 가끔씩 Auszubildende(수습생)들한테 시켜요.

일부러 니들이 해봐야 된다. 만약에 결과가 안 좋아요. 그러면 레시피 조금 바꿔서 또 해보는 거고 될 때까지 교육하십니다.

휴가일수는 독일에 있는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유럽이다 보니 알차게 군데군데 여자친구랑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Brot & Sinne GmbH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프랑스, 독일, 터키에서 온 다국적 근무자들




| 취업하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들이 무엇일까요?



언어, 문화 가 제일 힘들었지만 제가 목표로 하는 곡물빵을 만들 수 있다는 현실에 그냥 참고 버텼습니다.

부끄러운데 그냥 버텼어요. 하지만 새로 만나는 독일 사람들에게 이 회사에서 제빵사로 일하고 있다는 말을 건네면 한결같이 반응들이 좋은 직장에서 일한다고 대답을 들을 때마다 애사심도 생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스스로 체감하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왼쪽 순서대로 현수씨가 주로 사용하는 작업도구들 (칼,스쿱,작업붓,스크래퍼,밀대,온도계,작업대스크래퍼,장갑)




| 독일에 제빵 기술을 배우러 올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가볍게 생각을 안 하고 그냥 좀 마음을 굳게 먹고 준비를 해야 된다고 말을 하고 싶어요.

생활 자체도 녹록지 않은데 언어와 상대적으로 이른 근무시간에 오는 제약들이 있어 한국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비교적 어려우실 거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아시아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빵들을 배워 본인만의 무기를 장착하시는 측면에서는 그 인고의 시간들이 어떠한 것보다 가치가 있으실 거라 감히 확신합니다.




이현수 씨(왼쪽)와 Brot & Sinne GmbH직원들




MEISTER KLASSE는 유럽 내에서 인고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꿈을 펼치고 있는 한인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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