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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pr 29. 2022

어느 출근 길

늘 가던 길을 비켜 새로운 길을 통해 회사로 가던 날 아침이었다.


해오름극장쯤에서 버스에 오른 그는 입가에 익숙한, 하지만 이곳에선 낯선 어떤 미소를 띠고 있었다. 글쎄, 미소였는지 앙 다운 입술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시선은 그를 좇아갔다가 찬찬히 그의 손에 들려있는 노트로 옮겨졌다. 이내 알아차렸다. 같은 공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별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가 유독 이국적이게 느껴졌던 이유를. 어지럽게 쓰여 있는 장황한 외국어와 조금은 어색하게 쓰인 한국어 낱말들. 검은 머리의 그는, 아니 그의 몸 안에 담긴 영혼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이 아닌 외국 어느 나라의 것이었다.


어디서 왔을까. 작은 미소조차 곱게 보지 못하는 문화적 이질감이 가득한 이 나라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호기심 속에서 문득 스물아홉의 내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낯선 땅과 낯선 문화에 대한 열정. 스스럼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었던 순수함. 모든 것을 배우고 모든 것을 인정할 수 있었던 포용력. 찰나의 순간에 나는 그의 모습에서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래 전의 나를 만났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접었다.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은 서른을 훌쩍 넘은 나에게는 이제 너무나 무모하고 이상적인 일일 뿐이다. 낯선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것은 생각 외로 너무나 위험할 수도 있다. 또는 이제는 그럴 수 있거나 그것이 용납되는 때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사그라들었다. 아니, 그것은 핑계일 뿐. 어쩌면 나에게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 그를 지속해낼 에너지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남산을 넘어 서너 정거장쯤 달리다가 어느새 내가 내려야 할 곳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일어났다. 짧은 순간 눈이 마주쳤고,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2019.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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