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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Jun 26. 2022

사랑했던 것들은 언제나 미움이 될 수 있다

남자는 화난 얼굴로 내 차 창문을 내리더니 잠깐 사이에 가득 차오른 불편함을 얼굴과 목소리로 쏟아냈다. 항변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남자는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남자의 행동을 이해해보려고 했다. 날은 덥고 자리는 비좁고 오해는 오해를 불렀을 것이다. 옳고 그름이란 대부분 49대 51정도에 머무를 뿐이다. 남자와 여자는 30분 정도를 더 머물렀다. 나는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서 더 젖을 공간도 없는 휴지로 눈가를 계속 문질렀다. 여전히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당신들이 고마웠다. 4년전 겨울, 무려 9시간의 비행 내내 울던 나를 내내 모른척 했던 다리가 길고 머리가 노랗던 그 남자에게도. 타인의 슬픔에 무심해주어서, 그날 나는 무척이나 편하게 울 수 있었다.


사랑했던 것은 언제나 미움이 될 수 있다. 꼭 사랑했던 그 크기만큼이다. 나에겐 글이 그랬고,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쓴다는 것이 낯설었다. 글에 꿈을 품고 희망을 가지고 글을 쓰며 울고 웃던 지난 날의 내가 변덕스럽게도 싫어졌었다. 그렇다고 해서 글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는 늘 글이 있었다. 당신의 세계는 깊고 우아했다. 그래서 나는 늘 네가 글을 잘 쓰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당신이 가진 무형의 세계 안에서 틈틈이 유영하고 나를 확장하는 것이 실로 기쁘고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게 또다른 세상을 열어준 모두에게. 너에게. 당신께.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언어들은 좋은 글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아름다운 면모도 안다. 다 당신 덕분이다. 나는 평생에 처음으로 시집을 사기도 했고 앞으로도 시를 좋아하겠지. 문득 이 상황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그 무례함 때문이 아니라, 단지 마음 안에 울음이 산처럼 쌓여있었던 것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월의 여름 이후, 처음으로 마음껏 울어본 날이다.


202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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