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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Jan 17. 2022

내일로 가자

배달이 세 번이나 취소를 당했다. 밖에는 눈이 왔고 주문이 평소보다 몇 배는 밀린 모양이다. 늦게까지 야근을 할까 했는데 아무래도 밥이 없어 가야겠다. 그래도 벌써 8시다.


기존에 만들어둔 브랜드 영상에 카피가 필요하단다. 원래 내가 잡던 일이 아닌데 어쩐 일로 일이 여기까지 오게  건가 싶지만 꼭 알 필요는 없. 필기해  자료를 보며 목요일 받은 브리핑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복기해본다. 일단은 어떤 프로젝트든, 해야 하는 목적을 잊지 않는  중요하다. 목적은 방향이고, 최종적으로 도착해야  모두의 꿈이다.


오직 이미지로만 설득하고자 만든 영상이 다른 용도에 보내지게 되면서 설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카피와 영상이 만나는 지점이다. 직관적이게, 하지만 촌스럽지 않아야 할 것이다. 방향성은 있지만 방법론은 무한하다. 쉽게 말해 정답이 없다는 얘기다. 아, 원래 내가 하는 일이란 게 그렇다. 그러니까, ‘아’로 쓰든 ‘어’로 쓰든 ‘나’로 쓰든 ‘너’로 쓰든 그건 내 맘인데 어쨌거나 정답 없는 문제의 답은 정답에 가까워야 한다는 게 한치의 여유도 주지 않는 이 업의 패러독스다.


이틀 전 주말 새벽까지 잠을 버틴 형벌로 뇌는 오늘 하루 종일 파업이었다. 연거푸 커피를 서너 잔 마셨는데도 몸은 생존에 가장 필요한 부분만이 깨어 최소한으로 일을 하는 듯하다. 어쩌다 보니 주변은 퇴근하는데 나는 이제야 정신이 슬슬 든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을 살에 이리저리 꿰어 저 멀리 희미한 표적을 향해 던져본다. 하얀 페이퍼 위에 쏘아댔던 살의 흔적이 남는다. 다행이다.


시계를 보니 8시다. 아직 해야 할 게 좀 더 남았는데 생명 같은 저녁 배달은 연거푸 거절이다. 이럴 땐 집에 가야지 별 수 있겠나. 옷을 입고 신을 신고 가방을 챙긴다. 아, 그래도 원격을 켜놓는 일은 잊지 않는다. Hoxy 몰라 집에서 진정한 야근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그렇게 오늘을 보낸다. 그렇게 내일로 간다.




202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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