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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pr 04. 2022

작은 집에 사는 법

월 7만원의 작은 집을 나라에서 빌려주었다. 이곳에 살면 행복해진다고 했다. 겨우 한 사람의 삶이 비집고 들어갈 정도로만 알뜰하게 여유로웠지만, 구색은 다 갖춘 집이어서 살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다보니 어느 새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처음엔 임시 거처로 생각했던 곳이라 짐도 살림도 소박했다. 정착을 결심한 그 언제부턴가 가진 것들은 쌓이는 시간 만큼 불어났고 작은 집에서의 삶은 그만큼 더 복잡해졌다.


작은 집에 혼자 사는 건 장점과 단점이 뚜렷했다. 청각에 예민한 내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때때로 천장으로부터 쏟아지는 고독을 온 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혼자라서 부엌은 자주 파업을 했고, 침실과 옷장의 경계가 애매한 단칸 방에는 늘 출근 직전의 사투가 전쟁처럼 어지럽게 남았다. 퇴근 하고 돌아오면 무겁고 피곤한 몸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담고 빨래를 돌려야 했다. 때때로 고단함이 무릎만큼 차오른 날에는 그런 전쟁터 한가운데서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그런 날 중에 가끔 씻지 않은 날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아! 물론, 아주 가끔만 그랬다는 거다.


작은 집에 살면서, 가장 게을러지는 것은 단연코 버리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 정도 택배가 왔는데, 원하는 물건을 꺼낸 자리엔 늘 상자와 비닐이 산처럼 남았다. 당장 버릴 처지가 안될 때는 일단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두곤 했는데, 살짝만 고개를 틀어도 집안이 전부 스캔되는 이 작은 집에서 보이지 않는 공간이란 현관이나 베란다가 유일했다. 겨울같은 계절엔 베란다 문을 여는 것도 번거로울뿐이라, 그럴 땐 그냥 현관 앞에 상자를 예쁘게 쌓아둔다. 내일 버리지 뭐, 모레 버리든가. 아니면 주말에. 라는 생각을 하다가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다 보면 문득 발견하게 된다. 어느새 상자로 꽉 차버린 현관을.


작은 집에서  사는 법은  버리는 것이다. 뭐든 넘쳐나기 전에, 어떤 것이든 수위를 넘기 전에 버려야 한다.  디딜 공간과 아무것도 없을 권리를 지켜주어야 한다. 그래서 사는 만큼 버려야 하고, 들어온 만큼 내보내야 한다. 작은 집에 사는 법은 그래서,  비워내는 것이다.


작은 집을 위해 물건들을 비워내면서 늘 같은 생각을 한다. 나의 이 작은 마음을 위해서도 부디 잘 버려야겠다고. 그날의 어두운 감정과, 짙은 슬픔도. 누군가를 향한 실망과 미움도. 간직할 가치가 없는 것이면 오래되어 쿰쿰한 냄새가 나기 전에 비워내야겠다고. 오늘도 난 무엇을 버려야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면 이미 내 마음은 깨끗이 비워진 것이다.


20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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