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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18. 2021

좋아하는 가사 한 줄만 적어 볼래요?

QuestioN Diary 2  미소 속에 비친 그대

신승훈, 1집 앨범.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진 않지만 그보다 더 진한 향기가

 너는 별빛보다 환하지 않지만 그보다 더 따사로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거다. 나와 6살 터울인 오빤 중학생이었다. 오빠는 가사와 음표가 적힌 손바닥만 한 책을 들고 다니며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불렀다. 가사 외우는 게 숙제인 것처럼 계속 흥얼거렸고, 나중에는 나한테 자기가 가사를 하나도 안 틀리고 외우는지 확인해달라고 했었다. 오빠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와 문장에 귀 기울이며 눈을 책에서 떼지 못했다. 오빠는 비슷한 단어들이 반복되는 가사를 여러 차례에 걸쳐 간신히 다 외웠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에도 박혀버렸다. 10살밖에 안 된 나는 가사 내용이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그냥 입에 붙어버렸다. 나도 오빠를 덩달아 매일 흥얼거리며 그 노래를 불렀다. 음은 정확하지 않았다. ‘가요 톱 10’에 신승훈이 직접 그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알았다. 아, 나는 같은 가사에,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었구나. 혼자 얼굴이 발개졌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밖에서는 안 불렀었으니.

 


 오늘 다이어리의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른 가사가 30년 전 처음 외운 “미소 속에 비친 그대”의 첫 소절이다. 의미는 생각해 본 적 없이 그냥 흥얼거리기만 했던 가사를 적어보니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둘째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기분이 안 좋은지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엄마, 그림은 다 잘 그려야 하는 거야?”

 퉁퉁 부은 얼굴을 해서는 울먹이는 말투로 말한다. 오늘 미술 수업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둘째는 그림 그리고, 꼼꼼히 색칠하는 기본적인 미술 활동을 힘들어한다. 유치원 때부터 힘들어해서 미술 학원도 보내보고, 집에서 같이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아이는 이 분야에 별다른 관심 없고, 재미도 못 느꼈다. 그냥 대충하고 싶어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나로서는 이정도면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칠 거다. 그런 부분이 신경이 쓰여, 학년 초에 선생님께 아이 교육에 관한 부탁 글을 쓸 때면 이 부분을 매해 썼었다. 그런데 올해는 쓰지 못 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아니, 다 잘 그릴 필요는 없지. 왜? 무슨 일인데?”

 “오늘 달력 꾸미기를 했는데, 자기 생일이 있는 달을 꾸미는 거였어. 내 생일은 겨울이니까, 눈사람도 그리고, 목도리도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 트리. 이런 거 그렸단 말이야. 나는 열심히 그렸거든. 그런데 선생님이 이게 최선이냐고 말하는 거야.”

 “아, 그래? 최선을 다했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안 보시는 것 같아서 속상했구나?”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에고, 속상했겠네. 그렇다고 선생님이 막 화내시면서 말씀하신 건 아니지?”

 아이가 그렇게 말하니, 우선 아이 말을 들어주고, 아이 편이 되어주어야 했다.

 “엄마는~ 소리를 질러야만 화내는 건 아니잖아. 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고 나한테 그렇게 말할 때 표정하고, 말투가 화를 내고 있었다고.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마음 한 구석이 쓰렸다. 선생님에게도 살짝 서운했고, 조금만 더 잘 했으면 얼마 좋을까. 잘한다는 칭찬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상처를 받지 않을 만큼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이한테도 속상했다.

 흠, 표정과 말투로 자신에게 화가 나 있음을 아는 아이에게 어떻게 위로를 해주어야 할까. 꽉 안아주었다.

 “그깟 그림 좀 잘 못 그리면 어때? 네가 최선을 다했으면 됐어. 그리고 선생님 말씀을 너무 마음에 두지 마, 그냥 다음엔 더 잘 해봐야지라고 생각하자. 안 그러면 자꾸 자신감만 없어지거든.”     

 물론 쉽지 않은 얘기다. 이미 상처를 받았으니. 그래도 어쩌겠나. 나는 괜찮다고, 많이 발전한 걸 엄마는 알고 있다고, 토닥여 주었다.  


그러고는 신승훈이 사랑하던 여인을 생각하며 지은 가사를 사랑하는 아들에게 속삭여 주었다.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진 않지만 그보다 더 진한 향기가 나.

  너는 별빛보다 환하지 않지만 그보다 더 따사로와.”


 이 말을 들은 아들의 표정과 대답에 관한 이야기는 생략.

 딱 여기까지가 훈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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