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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13. 2021

많이 있다. 그래도 그건 없다.

 

© belart84, 출처 Unsplash                                                                        

밖에 날씨가 이렇게 더워진 줄도 모르고 긴 팔에 긴바지를 입고 외출을 했다. 강렬한 햇살이 달궈놓은 아스팔트가 이글거렸다. 덩달아 몸도 달아올랐다. 옷가게에 걸려있는 옷들은 얇아지고 짧아진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서로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져 있는 모양새가 그랬다. 당장 저 가게에 들어가서 옷을 사서 갈아입고 싶어 기웃거렸다.


 물론 집에 옷은 많다. 단지 어디 입고 나갈 옷이 없는 게 문제다. 해마나 철이 바뀔 때면 작년에 뭘 입고 살았었나 싶을 정도로 그런 옷이 없다. 특히나 여름옷은 더 그렇다. 옷 자체가 얇고 자주 세탁을 하다 보니 쉽게 낡아져 버린다. 잠옷만 늘어간다. 됐다. 이 정도면 오늘 옷 한 벌 살 핑곗거리는 충분하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옷장에 쟁여있는 몇 가지 옷을 수거함에 던져 버렸으니 티셔츠 두 개 정도는 사도 될 것 같다.


 계절이 바뀌어서 그런지 가게에 손님 북적거렸다. 우선 밖에 걸려있는 옷부터 둘러보았다.

그 가게 옆에 장난감 가게가 있었다. 엄마들은 옷가게에, 아이들은 장난감 가게를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네다섯 살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가 내 옆에서 옷을 만지작거렸다. 엄마 손을 잡은 아이는 장난감 가게 밖에 진열된 로봇 상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로봇 사면 안 돼. 집에 많아.


 로봇에게 눈을 떼지 못하던 아이가 엄마를 쳐다보며 혼잣말처럼 작은 소리를 내뱉었다. 엄마는 옆에 장난감 가게가 있었다는 걸 이제 눈치챈 것 같았다. 아이의 작은 목소리에 엄마는 바라보며 웃었다.


- 그렇지, 집에 로봇 많지?


엄마는 손에 쥐고 있던 옷걸이를 제자리에 걸어두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아이는 엄마의 눈을 보고 다시 로봇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저거는 없는데.


 아이는 더 작아진 목소리로 한마디 보탰다. 엄마는 그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아이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장난감이 눈에서 멀어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의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래도 스스로 주문을 외우듯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발걸음은 씩씩했다.   


 나는 옷걸이를 제자리에 걸어 놓았다. 나도 집에 옷이 많으니까. 손에 잡히고, 눈에 들어온 옷은 집에 있는 옷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취향은 잘 변하지 않으니까. 물론 저것과 똑같은 옷은 없지만.

가게에서 벗어나 걸었다. 그 아이처럼 씩씩하게. 아스팔트는 여전히 뜨거웠다. 얼른 여기를 벗어나 집에 가서 옷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쟁여있는 옷들을 정리하고 다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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