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May 28. 2021

자식과 부모 사이의 '나'

 주말 낮에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오리 새끼” 재방송을 봤다. 박군이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니 묘지에 찾아가는 장면이 나왔다. 20대 초반에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낸 박군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들을 두고 떠난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을까.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박군은 힘들 때 어머니한테 와서 눈물도 흘리고, 힘든 얘기도 하고 가면 후련하고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패널로 나온 사람들이 공감하며 한마디씩 했다. 자식의 아픔을 아무런 반문 없이 들어주고, 토닥여 주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고 했다.



글쎄, 정말 그럴까? 만약에 박군도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자신의 힘든 일을 저렇게 눈물을 흘리며 허심탄회하게 쏟아낼 수 있었을까? 물론 나도 기쁜 일이야 부모님께 제일 먼저 알리게 된다. 누구보다 기뻐해 준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힘듦에 대해서는 그게 잘 안 된다. 누구보다 아파하실 걸 아니까.



나는 올해 초 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많은 사람이 ‘착한 암’이라고 얘기하는 갑상선암이다. 하지만 아무리 착한 암이라고 해도 당사자에게 위안이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어느 암이든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와 위압감은 상당하다. 한동안 실감하지 못한 채로 벌여놓은 일을 수습했다. 모든 정리가 끝난 뒤에야 ‘내가 암 환자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우울감이 밀려왔고 잠시 멍해지는 순간은 어김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이런 상황을 털어놓지 못했다. 작년 12월부터 조직검사를 하고, 1월에 결과를 듣고, 대학 병원에 가서 수술 날짜를 잡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술 날짜도 3개월 뒤로 잡혔으니 괜히 일찍 말씀드려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 수술 한 달 전에 말씀드렸다. 그러고도 후회했다. 조금 더 늦게 말씀드릴걸.



누군가가 말했다. 자식을 걱정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것 또한 부모의 권리라고, 왜 함부로 부모의 권리를 빼앗느냐고. 맞는 말이다. 내 자식이 자신의 아픔을 말하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다면 그보다 가슴 아픈 일은 없을 것 같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됐지만 나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젠 투정을 부릴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였을까? 날 걱정하는 부모님이 밤잠 설치며 울고 계실 걸 알아서였을까? 아마 후자의 생각 때문이었을 거다. 칠십이 넘은 부모님이 게 될 자식의 아픔을 생각하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해주시는 걱정이 내겐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수술 전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난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면 안 돼요.’라는 말로 내가 부모님을 위로하고 있으니까.



세월이 지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또 우리 아이들이 커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서운해지겠지만,

지금 내 생각은 이렇다.

부모님의 자식으로, 자식들의 부모로 중간에 있는 ‘나’는  어느 쪽으로도 고개를 돌려 허심탄회하게 울 곳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 오늘을 남기다] 낯섦의 훈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