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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17. 2021

‘우리’가 함께한 긴긴밤

긴긴밤 / 루리 글, 그림 / 문학동네

루리 글, 그림문학동네




 코끼리 고아원유일한 코뿔소 노든. 노든은 코끼리들과의 생활에서 행복했다. 마치 자신도 코끼리인 것처럼.

 고아원의 사람들은 코끼리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고아원에서 평생을 보낼 것인지, 바깥세상으로 나갈 것인가를 선택할 기회였다. 노든에게도 선택의 날이 다가왔다. 고민이 되었다. 편안하고 행복한 코끼리 무리에서 살아갈 것인가, 바깥세상으로 나가 코뿔소로 살아갈 것인가. 노든이 고민하는 모습을 본 코끼리가 다가와 말했다.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노든은 코끼리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본다. 코뿔소 무리 속에 들어간 노든은 아내를 만나고 딸도 낳는다. 더없이 완벽한 삶이었다.


‘노든은 아내와 딸에 대해서는 항상 말을 아꼈다. 아내와 딸은 노든의 삶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이었고, 그 눈부신 반짝임에 대해 노든은 차마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p24


그러나 가장 완벽했던 밤에 모든 것을 잃는다. 자신만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사람들에게 구조되어 동물원으로 간다. 노든은 오로지 복수를 생각하며,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 그곳에서 앙가부를 만나 탈출 계획을 짠다. 하지만 앙가부 역시 사람들의 손에 죽게 된다. 노든은 다시 망연자실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전쟁’이라는 것이 떨어진다. 동물원의 많은 동물이 죽는다. 노든은 다행히 그곳을 탈출하고, 펭귄 치쿠를 만나게 된다. 치쿠 역시 동물원에서 알이 든 자그마한 양동이를 입에 물고 탈출했다. 둘은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노든의 긴긴밤이 시작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둘이 긴긴밤을 보내며 우리가 되고, 서로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노든이 겪은 불행을 단지 읽고만 있는데도 고됐다.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는 감정을 난 얼마만큼 공감할 수 있을까? 살려고 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사라지니 살게 되는 심정일까? 가슴이 먹먹했다. 다행히 노든에게 희망이 생기고, 목표가 생기고, 책임감마저 생겨 최선을 다해 걷고 또 걸으며 긴긴밤을 보낸다. 우리네 인생도 노든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겠지? 힘듦을 겪고 이겨내고, 또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니까.


“저기 지평선이 보여? 초록색으로 일렁거리는. 여기가 내 바다야”

“나도 여기가 좋아요. 여기에 있을래요.”

“너는 펭귄이잖아. 넌 네 바다를 찾아가야지.”

“그럼 나 코뿔소로 살게요. 내 부리를 봐요. 꼭 코뿔소같이 생겼잖아요.”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이리 와. 안아 줄게. 오늘 밤은 길거든.”

-p115


 노든은 어릴 적 코끼리들에게 받은 사랑을 그대로 어린 펭귄에게 주고 있었다. 노든의 모습을 보고 엄마인 내 모습을 생각해본다. 나도 저렇게 아이들을 믿어주고 안아주는 엄마인가. 내일부터는 잔소리 좀 덜해야지. 자주 하는 결심이건만 어렵다.

 혼자 자신의 바다를 찾아가는 펭귄에게 두려움과 고통이 반드시 따를 것이다. 하지만 결국 바다를 찾아낸 펭귄의 삶은 노든 옆에서 코뿔소처럼 살아보겠노라고 했던 때와는 다른 희열과 자신감으로 무장될 것이다.

       


 글도 그림도 따뜻하고 예쁜 책이다. 글을 쓴 루리 작가가 직접 그림도 그렸다. 그래서 그런지 문장도 섬세하고 예쁘다.

 우리는 호숫가 모래밭에 누웠다. 하늘이 예쁜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저거는 무슨 색이라고 불러요?”

 “저렇게 예쁜 하늘 색깔에 이름이 있을 리가 있겠어?”

 “음, 저건 잘 익은 망고 열매 색 같아요. 기억나요? 우리가 그때 먹었던 망고 열매요.”

 “기억나고말고. 운이 좋았지. 그렇게 잘 익은 망고 열매를 발견하다니. 듣고 보니 정말 잘 익은 망고 열매 색이구나.”

-p.98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잘 익은 망고 열매 색. 나도 그냥 붉고 곱다고만 표현한 노을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 줘봐야겠다.



 아이도 함께 이 책을 읽었다. 나는 노든이 받은 고통의 무게를 가늠하며 보느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는 혼자 남겨진 어린 펭귄이 끝까지 바다를 찾아가는 모습이 대단해 보인다고 했다. 지금의 자신은 어린 펭귄만큼의 용기가 없다며, 엄마 아빠 품에서 조금 더 있어야 한다고.

 그래, 그러자. 너 혼자 너의 바다를 찾아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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