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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09. 2021

[오늘을 남기다] 기억 그리기

© Alexas_Fotos, 출처 Pixabay


둘째 아들은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조금 넘었다.

학교 온라인 수업이 끝나면 영어 숙제를 한다. 영어 사전을 듣는 숙제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싫은 내색 안 하고, 엉덩이 붙이고 진득하니 앉아서 집중한다.

그런 모습이 기특하다며 연신 감탄사를 날려주고,

칭찬해주며 옆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어야지 무사히 숙제를 마친다.


숙제를 다 마친 아들은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며 묻는다.


“내가 처음으로 외운 영어 단어는 뭘까?

 뭐지?

 난 언제부터 영어를 들었지?”


내게 묻는 건지, 혼자 자신이게 묻고 있는 건지, 중얼거린다.

그래도 내 귀에 들렸으니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 것 같아서 한마디 했다.


“글쎄? 뭐였을까?

 아, 엄마는 apple이었는데. 중학교 때 처음 영어 배우면서,

알파벳을 배우고 ‘A’로 시작하는 단어로 apple을 처음 외웠던 것 같다.

그때는 발음을 외우지 않고 ‘에이 피 피 엘 이’ ‘애플’ 이렇게 외웠어.”


애써 기억을 더듬어 가며 아들에게 이야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한숨을 푹 쉰다.

그러고는,


“휴우, 엄마는 그러~ㅎ 게 오래된 것도 잘 기억해 내는데,

 나는 몇 년 안된 것도 기억을 못 하네.”


하며 떠가는 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제 10살밖에 안된 녀석이 뭐 저리 청승스럽게 얘기하는지…


아들이 힘줘 말한 ‘그렇게’에 괜히 빈정 상하긴 했지만

저 작은 머리로 별 생각을 하고 있구나 싶어 귀여웠다.


아들아, 지금 당장은 생각이 안나도

언젠간 오래된 기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질 때가 네게도 올 거야.


20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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