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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Sep 24. 2021

[오늘을 남기다] 걸었다.

출근하는 남편을 눈곱만 떼고 따라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남편은 지하 1층 주차장을 나는 1층을 눌렀다. 

내가 먼저 내리며  "잘 다녀와요. 수고하고요." 하며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걸었다.

잠깐 마스크를 벗어 아침 공기를 마셨다. 

계절마다 아침 공기의 냄새와 맛이 다른데,  오늘은 딱 가을 아침 공기 맛이었다.

아주 차갑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공기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걸었다.


배가 주황빛인 작은 새들이 나무를 옮겨 다니며 나를 앞섰다.

크기는 딱 참새 만했다. 참샌가 하고 걸음을 멈추고 찬찬히 보았다. 

참새가 아니다. 

검색을 해보니 떼까치와 비슷해 보였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냥 오늘은 떼까치로 알고 넘어가는 걸로.

한번 눈에 띄기 시작하니 계속 떼까치만 보인다. 

언제부터 같은 단지에 살았을까?

쬐그맣고 이쁜 게 볼매다.(볼수록 매력있네.)

또 걸었다.


어! 아직 달이 보인다. 

한가위에 사람들이 빈 소원을 가득 채웠던 달이, 

소원을 하나하나 들어주면서 덜어내는가 보다.

달님은 지금이 성수기겠지?

수고해요. 달님.  

계속 걸었다. 


아파트에 텃밭이 있다.   

상추, 고추, 가지가 꽤 탐스럽다.

몇 평 되지 않는 텃밭에 주인들이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느껴졌다.

그런데 탐스러운 채소들 옆에 코스모스 터널이 있었다.

딸내미 양 갈래머리를 묶듯 흐드러진 코스모스를 한데 모아 버팀목에 동여맸다.

가을 가을 한 텃밭 주인님 덕분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한 바퀴만 돌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다시 걸었다.



한 바퀴에 1km, 오늘은 두 바퀴 2.11km. 

두 팔 흔들며 파워워킹을 하지는 않았다. 땀도 안 났다. 

단지 눈과 마음과 머리만 맑아졌다.

어디든 개운하니 됐다!


2021.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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