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Oct 01. 2021

[오늘을 남기다] 푸른 하늘

종혁이의 줌 수업이 1교시부터 4교시까지로 늘어나 오전에 여유가 생겼다.

학교에 가는 것보다야 덜하지만 어쨌든 선생님과 비대면으로라도 수업을 하고 있으니

내가 신경 써줄 부분이 줄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도 하나 둘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종혁이 방 문을 살짝 닫고 책 한 권과 텀블러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커뮤니티에 있는 북 카페에서 라떼 한 잔을 시키고 구석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점점 시끄러워졌다.

차리라 밖에 더 조용할 것 같아 짐을 챙겨 나왔다.

시원한 공기를 뚫고 살에 닿는 햇살이 따뜻했다.


단지에 있는 어린이집 친구들이 산책을 가려고 나와서 줄을 섰다.

3살에서 5살 정도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짝꿍과 손잡고 쫑알쫑알 거리는 소리가 어쩜 그리 사랑스럽게 들리던지.

역시 아이는 남의 아이가 제일 귀여운가 보다.

먼저 움직이려는 아이들을 선생님이 손을 잡고 멈추어 서서 말했다.


"얘들아, 잠깐, 우리 하늘 한 번 보고 가자."


아이들은 짝꿍 손을 꼭 잡고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봤다.  

2021.10.1 하늘

하늘은 그냥 파랬다.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게 파랬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보라니까 보긴 했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심심했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우와, 얘들아 오늘은 예쁜 파란 하늘이다. 그치?"

선생님은 목소리 톤을 높여 아이들에게 말했지만

몇몇 아이들이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역시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이끌고 잔디밭으로 갔다. 그제야 아이들의 목소리가 파란 하늘 위로 튕겼다.


아직 파란 하늘이 예뻐 보이지 않는 나이인가 보다.

언젠가 종혁이한테

'저 파란 하늘 좀 봐봐. 예쁘지?' 했더니,

'텅 비었고 만 뭐." 하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아이들은 그런가 보다. 하늘에 공룡도 한 마리 있고, 토끼도 있고, 하다못해 솜사탕이라도 있어야 볼만한가 보다.


어린이집 선생님 덕분에 나만 푸른 하늘에 심취해버렸다.


푸른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아무 생각 없고 당신만 그냥 많이 보고 싶었다.

김용택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푸른 하늘을 보면 언젠가 한 번 입 밖으로 내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오늘이 그날이다.



푸른 하늘

                    김용택


오늘은 아무 생각없고

당신만 그냥 많이 보고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을 남기다] 제 잘못이 아니거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