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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Dec 17. 2021

짝사랑

© timwoolliscroft, 출처 Unsplash

‘어, 언제 없어졌지?’

오랜만에 종혁이와 다니던 단골 미용실을 찾았다. 그런데 미용실 간판이 바뀌었다. 같은 자리에 옷가게가 들어섰다.

단골 미용실로 다니던 곳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한두 번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는 미용실을 이용했다. 3개월 만에 그곳을 찾은 셈이다. 좋아하던 친구가 말도 안 하고 전학 가버린 것처럼 서운함이 밀려왔다. 나 혼자 사장님하고 친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엄마, 미용실이 없어졌는데?”

“그러게... 우리가 너무 오랜만에 왔나보다.”

‘그래도 말이라도 해주고 가시지.’ 내심 서운함이 깊게 파고들었다. 그래도 요즘은 핸드폰 번호로 회원가입을 하고 포인트도 쌓는데, 뭐, 못 쓰게 된 포인트가 아까워서라기보다 회원들에게 이전 안내 문자 정도는 보내 줄 수 있는 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외할머니가 가까이 사셨다. 할머니는 시장 노상에서 나물 장사를 하셨다.

특히 도라지를 농산물시장에서 한 박스 사다가 하얀 살이 드러나 보이게 깨끗이 까서 박스 위에 가지런히 정리해 파셨다.

장사가 잘되는 날은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다 파셨고, 늦어지는 날은 여름 해가 질 무렵까지 시장에 계셨다.

할머니는 장사를 일찍 마치던, 늦게 마치던 항상 민우당에 들르셨다. 민우당은 시장 입구에 있던 약국이다. 소화제, 게보린, 파스를 주로 사셨다. 딱히 살 게 없을 때는 쌍화탕이라도 한 병 사서 드셨다.

약사님은 할머니께 어머니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대하셨다. 어쩌다 할머니를 따라 약국에 들르면 내게도 반갑게 인사를 해주시며 요구르트를 꺼내 주셨다.

어느 날, 할머니의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던 그곳이 갑자기 없어졌다. 물론 약사님한테는 갑자기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주말이 지나고 시장에 가셨던 할머니는 민우당의 셔터가 수요일이 될 때까지 다시 올라가지 않는 걸 보고 약사님이 어디 아프신가 하고 걱정을 하셨다.

꾹 닫혀있던 셔터가 다시 올라가는 건 일주일 뒤였다.

활짝 열린 문으로 들여다 보이는 약국 내부는 텅 비어있었다. ‘민우당’ 간판도 아저씨들의 손에 곧 떼어졌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잠시 아무 말 없이 보고만 있다가 한숨 섞인 욕을 내뱉으시더니 도라지 박스를 머리에 이고 시장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때는 할머니의 한숨이, 한마디 욕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었다.

옷가게로 바뀐 미용실을 보며 드는 이 감정이 아마도 그때 할머니의 그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날씨가 점점 추워져 차가운 바람이 미용실이 있던 골목에 가득 찼다.

다시 시작된 사회적 거리 두기의 강화로 거리의 사람들도 드문드문 다녀 썰렁함이 더했다.

종혁이 손을 잡고 뒤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더욱더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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