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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an 25. 2024

오늘을 남기다] 엄마가 보고 싶은 날

저녁 8시 30분이 되면 아파트 헬스장에 간다. 

매일 40분 유산소 운동을 기필코 한 달은 채우겠다는 마음으로 간다. 

다행히 지난 크리스마스에 남편이 사준 버즈 덕분에 그 시간이 즐겁다. 

뛰는 내내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예능도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오늘도 어김없이 8시 30분에 헬스장에 갔다. 

러닝머신 8개 중 2개가 비어있었다. 하나는 남자분 옆에, 하나는 여자분 옆에. 

별 고민 없이 여자분 옆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뭘 보면서 뛸까 핸드폰을 열어 검색하면서.

러닝머신에 오르는 순간 앞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어' 소리를 내며 퉁퉁 튕겨 또 넘어졌다. 

러닝머신이 켜져 있었던 거다. 그것도 모르고 핸드폰만 보고 올라갔다가 이 사달이 나버렸다. 

얼굴도 러닝머신 레일에 부딪쳐 안경은 튕겨 날아가고 핸드폰은 진작에 떨어져 멀리 튕겨 나가 버렸다. 

혼자서 우당탈 소리를 내며 넘어져 버렸다. 

옆에서 뛰고 있는 누구도 괜찮냐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아들 또래로 보이는 학생이 핸드폰을 주워주었다. 창피하면서도 고마웠다. 

'에이' 짜증을 내며 러닝머신을 멈추고 레일 위에 올라갔다. 뛸까 말까 고민하다가 손에는 피가 나고 무릎은 욱신거려서, 아니, 그보다도 창피해서 그냥 나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헤드셋 끼고 게임하던 아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엄마, 왜 벌써 왔어?" 

"다쳤어."

"왜 다쳤어? 그래서 운동 안 할 거야?"

또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대꾸도 안 하고 안방에 들어갔다. 일하고 있던 남편도 물었다. 

"왜 벌써 왔어?"

"다쳤어."

"왜? 어디, 봐봐."

남편은 내 다친 손을 보고 '아이고. 아프겠다. 호.' 하고 불어 주었다. 

"아니, 누가 러닝머신도 안 끄고 갔더라고, 그것도 모르고 난 핸드폰 보다가 넘어졌다. 더 큰일 안 난 게 다행이지만. 아후, 짜증 나. 생각 없이 그냥 올라간 내 잘못이지 뭐."

나는 남편 앞에서 짜증스럽게 투정을 부렸다. 

"에이. 누가 그런 거야!"

남편은 투정 부리는 날 달래려는 듯 말하고는 금방 다시 일을 했다. 


나는 손을 씻고 나와 약상자를 찾았다. 상처에 소독약을 뿌리고 연고를 발랐다. 밴드를 부칠까 말까 고민했다. 생각보다 깊은 상처가 괜히 서럽게 느껴져 밴드로 감싸버렸다. 

집안은 조용했다. 아들은 여전히 헤드셋 끼고 게임하고, 남편은 방에서 일하고.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아플 때, 다쳤을 때, 약 사다 주고, 연고 발라주고 밴드 붙여주는 던 엄마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다.

작은 상처에도 화들짝 놀라고 밴드를 붙여주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춘기 때는 그런 엄마의 관심이 귀찮아 상처를 숨겼던 기억도 있다. 참 나쁜 딸이었다. 누군가에게 온전한 보살핌을 받았던 건 그때까지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픔과 상처는 스스로 치유해야 하는 게 되고, 하물며 아들들이 생기고부터는 그들이 내 안에서 온전한 보살핌을 받는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 한다. 

이런 작은 상처 따위로 징징거리며 투정 부리고, 약을 발라주길 바라며 손 내밀고 있는 건 웃기는 일임을 안다. 그걸 알면서 나는 왜 지금 서러울까? 왜 내 다친 손을 보면 놀라며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부쳐주실 것 같은 엄마가 생각났을까? 그리고 각자 할 일하느라 조용한 아들과 남편한테 왜 서운할까?

그냥 오늘은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라 그런 걸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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