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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31. 2020

[오늘을 남기다] 마음을 움직인 일기장

“이건 뭐야? 2016년 나예준?”

만화책을 찾으려고 열심히 책장을 뒤지던 종혁이가 낡은 공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

공책 표지에 ‘2016년 나예준’ 이라고 적혀있었다. 일기장이다. 예준이가 7살때 썼 던 일기.


첫째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온갖 걱정이 앞섰다.

글도 제대로 읽어야 할 것 같았고,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라도 몇 글자 적을 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어느 정도 안심이었지만, 글쓰기는 걱정되었다. 그래서 일기 쓰기를 시켰다.

매일 저녁 전쟁을 치르다시피 하면서 일기를 쓰게했다.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오늘을 기록했으면 좋겠다고 어르고 달랬다.

그렇게 억지로 쓰던 일기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그만뒀다.

단 몇 자 적는 일기 말고도 해야할 것들이 많았고, 학교에서도 일기쓰기 숙제를 일주일에 한 번씩 했기때문이었다.

예준인 학교 숙제로 하는 일기 쓰기를 다른 숙제에 비해 유난히 더 싫어했다. 그때도 전쟁이었다.

얼마지나 생각해보니 예준이가 일기 쓰는 걸 싫어하게 된 건 내 잘못인 것 같았다. 괜한 욕심에 하기 싫다는 걸 억지로 시켜서 그런 것 같았다.


그때의 예준이의 일기장을 종혁이가 찾아 온 것이다.

“형아! 이거 형아 일기장이야!”

종혁이는 자신의 글씨처럼 삐뚤빼뚤하게 쓰여진 형의 글씨를 보고 신기해한다.

“줘봐. 어! 이거 언제 쓴거지? 2016년이면 나 7살인가? 내가 일곱 살때 쓴 일기구나!.

자! 어디보자. 5월 13일 금요일. 실패. .......”

예준이는 춤추는 글씨와 띄어쓰기가 제멋대로인 일기를 읽으며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렇게 재미있는 내용도 아닌데 형이 웃는 모습이 웃겨서 인지 종혁이도 덩달아 깔깔거린다.

“형아 일기장에 내 얘기는 없어? 정말 이런 일 있었어?”

종혁이는 형의 일기장을 만화책보다 더 재미있어했다. 3개월치의 일기를 다 읽었다.

“엄마, 나는 왜 일기장 없지?”

종혁이가 내심 부러웠는지 서운한투로 묻는다.

첫째 아이에게 겪은 시행착오는 고스란히 둘째 아이에게 영향이 미친다.

종혁이한테는 무언가를 억지로 강요하지 않게 된다. 일기를 썼으면 좋겠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었다.

더욱이 일곱 살이 되어도 한글 읽는 것조차 힘들어 했던 아이에게 일기를 쓰라고 하는 건 더 큰 고문 일 것 같았다.

아이의 물음에 차마 이 장황한 설명은 못 해주었다. 미안하고, 나도 안타깝다는 동조만 해주었다.

“그럼, 오늘부터라도 기록할래? 저렇게 형처럼 단 한 줄만 써도 되는데.”

“그래야겠다. 나도 일기 쓸래.”

종혁이는 빈 공책을 찾아와 정말 딱 한 줄의 일기를 쓰고는 상당히 뿌듯해했다.

“나도 다시 써봐야겠다.”

종혁이의 설레발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예준이도 공책을 찾아왔다. 그러고는 지금 이 순간을 한 줄로 기록하고 일기장을 덮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또 배운다.

무슨 일이든 억지로 하게 하면 부작용이 일고,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게 된다.


그럼 나(엄마)는 기다려주면서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접하게 해주어야 겠다.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그 무엇이든.


20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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