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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ug 02. 2020

말해줘서 고마워


2020년 현재

예준이는 11살, 종혁이는 9살이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한참 게임을 하면서 행복해하던 예준이가 빨래를 널고 있는 내 주위에 와서 맴돈다. 예준이 얼굴은 장마철 하늘처럼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낼 것처럼  잔뜩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내 눈치를 살피며 아니라고만 말한다. 다시 한번 물어도 대답을 안 해서 말하고 싶을 때 말하라고 하고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무슨 게임했어?”

 “브롤 스타즈도 하고, 마인크래프트도 했어요.”

 “브롤 캐릭터는 뭐 했어?”

 “서지.”

 예준이가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길 바라며 내가 알고 있은 ‘예준이 세계’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대화를 이어 본다. 예준이는 엄마가 알아듣던 말던  최선을 다해  친절히 설명해준다. 그러다 다시 인상을 쓰며 눈치를 살핀다. 어렵게 작은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오랜만에 내 클럽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내 욕이 쓰여있었어요.”

 이제 초등 4학년인 예준이가 생각하는 욕은 내 기준에 그렇게 세지는 않다. 남자아이들이 놀면서, 특히 게임하면서 목소리를 높여가며 내뱉는 거친 말 정도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예준이한테 게임 게시판을 보여 달라고 했다. 예준인 선 듯 보일 수 없다고 했다. 거기에는 엄마 욕도 쓰여있다고 했다. 난 게임한 적도 없는데 내 욕은 왜 했을까. 괜찮으니 보여달라고 했다.

 충격이었다. 다 아는 욕이었지만, 내 아들 이름 석자를 시작으로 이따위 욕을 지껄여놨다니. 예준이가 말한 엄마의 욕은 ‘니 어미...’로 시작했다. 차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읽을 수가 없었다. 당황한 내 얼굴을 살피는 예준이의 눈은 미안함과 괴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고는 내게 사과를 했다.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정리해야 했다. 예준이가 쓸데없는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앞으로 더 한 일이 닦쳐도 내게 지금처럼 말해줄 수 있도록.

 “예준이가 왜 미안해? 이 녀석 누군지 모르지만 입이 엄청 거치네. 이 아이디 신고해버리자.”

 난 예준이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신고버튼을 눌렀다. 예준이는 주먹으로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제 겨우 11살인 아이한테 꽤나 큰 충격이었나 보다. 물론 나도 그랬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겪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닥치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었다.

 “예준아, 그런데 앞으로 계속 게임도 하고 친구들하고 카톡도 하고 하다 보면, 이것보다 더 심한 말도 듣고 보게 될 수 있어. 그때마다 너무 충격받고 힘들어할 필요는 없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던가. 아니면 엄마처럼 신고 버튼 누르던가 하면 돼. 알았지? 또 혼자 감당하기 힘들 때는 꼭 엄마, 아빠한테 얘기해야 하고. 예준이는 이런 말 안 했으면 좋겠어. 물론 친구들과 놀면서 욕을 자연스럽게 하게 될 수도 있는데,  욕이 이렇게 지나치진 않았으면 좋겠어.”

 상처 받은 예준이를 위로한답시고 내 노파심을 한껏 드러내면 이야기를 했다. 최대한 현명하게 얘기를 하고 싶었은데, 뇌는 거치지 않고 가슴속에서만 말이 쏟아졌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몸이 힘들었는데, 커갈수록 마음이 힘들어진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얼마 후에 뒤집고 걷고, 이는 언제 몇 개 나는 건지가 궁금해 책을 찾아보던 게 얼마나 행복했던가 새삼 느껴지는 날이다.


 “엄마, 아까는 엄마한테 이거 보여주면 안 될 줄 알았어요. 말하고 나니 편해요.”


 예준이의 이 말이 아직 많아 부족한 엄마를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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