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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ug 17. 2020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기??

 현재 2020년

예준이는 11살이고, 종혁이는 9살이다.



 주말에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가까운 공원 정도는 다녔었는데 백화점에 간 건 거의 10개월 만이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매장에 마네킹들은 여전히 화려하고 도도하게 서있었다.

 ‘와~’ 하고 작은 탄성을 질렀다. 손잡고 걷던 종혁이가 나의 작은 탄성 소리를 듣고 한마디 한다.

 “엄마, 마네킹이 입은 옷을 보고 똑같이 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왜? 예쁘니까 사는 거지.”

 “아니, 마네킹 몸하고 얼굴까지는 살 수 없는 거잖아. 내가 입으면 저렇게 예쁘지 않을걸.”

  “헉! 이 녀석.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나는 기가 막혀 종혁이 손을 꽉 잡아버렸다. 어쩜 이리 얄미운 소리만 골라서 잘하는지.

  크게 산 건 없지만 눈을 정화한 기분이라고 할까. 알록달록 예쁜 것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은 팬시점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도 아기자기 예쁜 것들을 보면 한 번씩 들었다 놓는데 아이들은 오죽하랴.

 각자 하나씩 맘에 드는 거 고르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노트를 고르고, 아이들은 먹는 걸 집었다.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꽝 없는 뽑기 판”이 있었다.  어렸을 때 문구점 입구에서 50원, 100원에 한 번씩 뜯어 뽑던 그 뽑기판이었다.

그때는 꽝이 제법 잘 나왔는데 이건 꽝이 없다니 구미가 당겼다. 남편은 냉큼 집어 들어 같이 계산을 했다.


집에 와서 다들 뽑기판에 관심이 쏠렸다.

뽑기판엔 1등이 1장, 2등이 2장, 3등이 3장, 4등은 4장, 5등은 40장이 들어있었다.

우선 1등~5등까지의 상품을 정해야 했다. 각자 사심 가득 넣어서 상품을 외쳤다. 결국 후보들 중에서 다수결로 상품을 정했다.

1등  : 하루 종일 왕.

2등 :  소원 3가지

3등 : 문화상품권

4등 : 주말 저녁 선택권

5등 : 심부름권


단, 뽑기를 뽑을 수 있는 기회는 착한 일을 했을 때 기회가 1번 부여된다.

착한 일은 집안 청소, 분리수거, 빨래 개기, 밥상 차리기, 설거지 등으로 정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 나눔을 했을 때를 착한 걸로 하기로 했다.


모든 게 정해지자 마자 다들 분주했다. 난 설거지를 했고, 예준이와 아빠는 빨래 정리를 했다.

그런데 종혁이는 돌아다니면서, 돌아다니면서, 돌아다니기만 했다. 아니, 안방에 침대를 정리했다고 했다.

딸랑 고거 하나 해놓고 두 손을 모으고 뽑기 판 앞에 서서 우리를 재촉했다.

 “아, 뺀질이~ 기다려! 우리 다 할 때까지 뽑기 판 만지면 안 돼!

 예준이는 종혁일 째려보며 손을 빠르게 놀렸다. 그 순간 종혁이는 못 참고 뽑기 하나를 살짝 긁었다.

 “야~!”

 모두 종혁이를 향해 소리쳤다. 종혁이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우린 서둘러 일을 끝내고 뽑기 판 앞에 섰다.

 “자, 이제 하나씩 뽑는 거야. 그리고 종혁이는 아까 네가 조금 긁은 거 그거 뽑아야 해.”

 남편은 종혁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아까는 실수였어요. 난 그거 뽑기 싫었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고 살짝 긁힌  거예요.”

 종혁이는 억울하다는 듯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동요되지 않았다.

 이제 누가 먼저 뽑을지 가위바위보를 했다. 순서는 예준이, 종혁이, 남편, 나였다. 우린 하나씩 뜯어 식탁에 앉았다.

 이번엔 나, 남편, 종혁이, 예준이 순서대로 뽑기를 긁기 시작했다.

 “아, 오늘 하루 왕이 되고 싶다.”

 난 주문이라도 외우듯 중얼거리며 긁었다. 이게 뭐라고 긴장감이 돌았다.

 처음으로 긁은 내 뽑기엔 한글로 [오 등]이라고 쓰여있었다. 원래 이런 운은 없다지만 아쉬웠다. 그다음에 긁은 남편도 오등이었다.

 드디어 종혁이 차례다. 우리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손으로 가리며 긁었다. 그러더니 큰 소리로 “이~~~~~등~~~~~!”이라고 말했다.

 이 뽑기 판에 2등은 달랑 2장인데, 정말?

 이렇게 빨리?

 그것도 종혁이 손에?

 우리는 모두 의심을 하며 종혁이 뽑기를 확인했다.

 이럴 수가. 맞았다. [이 등]. 한글 고딕체로 반듯하게 쓰여 있었다.


 마지막 예준이가 뽑기를 긁었다. 예준이는 그냥 ‘오등’이었다. 뺀질이 종혁이가 2등을 뽑은 거에 나와 예준이는 배가 아팠다.

 5등 상품 심부름권으로 종혁이에게 물 한잔씩 떠오라고 시켰다. 종혁인 신이 나서 얼른 물을 떠다 주었다.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냐, 착한 일은 제일 적게 하고, 아이고 배 아파.”

나는 일부러 예준이를 의식하며 말했다.  


하느님이 미운   하나  준거네. ”

예준이는 오히려 의연하게 말한다. 그러게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종혁이는 신나서 세 가지 소원을 모두 게임 시간과 바꿨다. 장차 4시간 동안 게임을 했다.

옆에서 보고 있는 예준인 한 번만 시켜달라고 갖은 애교를 부를고 있다.   



“예준아! 그런 미운 놈 운은 한 번이지 매번 그렇지는 않을 거야.

예준아 1등은 꼭 네가 뽑아!”


예준이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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