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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ug 10. 2020

아빠가 수상해요.

2020년 현재

예준이는 11살, 종혁이는 9살이다.


 남편은 퇴근 시간이 매일 늦다. 10시에서 11시 사이가 될 때가 대부분이고, 그보다 더 늦을 때도 잦다. 그러니 아이들과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밥을 같이 먹는 건 주말에나 가능한 일이다.  밤에 들어오면 자고 있는 아이들 얼굴에 까칠해진 볼을 살살 비비며 입 맞추고 안아준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철철 넘친다. 하지만 주말 같은 경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힘들어한다. 그래서 곧잘 하는 말이 “반드시 고등학교는 기숙학교로 보내야 해.”이다. 처음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였는데 자주 들으니 그냥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걸 힘들어하는구나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이번 휴가 5일 중 4일은 밖에서 보내고 마지막 하루를 집에서 쉬기로 했다. 그런데 남편은 5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진이 빠진 것 같았다. “빨리 독립시켜야 되겠어.”라는 말을 여러 번 내뱉었다. 나는 기분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자꾸 그런 말을 하니 서운했다. 평일에 일찍 들어와 애들과 놀아주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주말 이틀을 함께 보내고, 그것도 어떤 때는 주말마저 출근하면서 꼭 그렇게까지 생각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나의 이런 서운한 감정을 내비쳐 이야기했다. 남편은 살짝 겸연쩍어하고 말았다.


 다음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대뜸 아이들과 데이트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단 한 주에 한 명씩 하겠단다. 어제 내가 한 말이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달력에 돌아오는 토요일에 동그라미를 치고 ‘종혁이와 데이트’를 썼다.



 데이트하기로 한 토요일이 되었다. 아침부터 종혁이를 따라다니며 아빠랑 하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본다. 종혁이는 인천에서 열리고있는 브롤 스타즈 행사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장맛비가 며칠째 계속 내리고 있어 비를 뚫고 이동하기가 곤란했다. 종혁이는 그거 아니면 싫다고 하고 남편은 이것저것 제안을 하다가 하루가 다 가버렸다. 대신 종혁이가 좋아하는 젤리를 한 통 사다가 안겨주는 걸로 데이트 계획을 접었다.

 저녁밥을 먹고 남편은 미안하고 아쉬웠는지 종혁이에게 동네 한 바퀴만 같이 돌자고 했다. 때마침 비도 그쳐주었다. 종혁이는 선 듯 좋다고 하고 따라나섰다. 나는 놀이터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겠다고 따라나섰다. 놀이터를 중심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면 내가 줄넘기 1000번을 넘는 동안  2~3바퀴는 돌아야 했다. 그런데 거의 1000번을 넘어가는데도 남편과 종혁이는 한 번도 지나가지 않았다.


 “헉헉, 엄마~”

 종혁이는 숨을 거칠게 쉬며 달려왔다.  남편은 느긋하게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엄마, 엄청 멀리 갔다 왔어, 저~ 기 밑에까지 갔었어요. 아빠가 동네 한 바퀴 돌자고 하더니 자꾸자꾸 멀리 가는 거야. 무서웠어요.”

 종혁이는 멋쩍게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을 한다.

 “왜 무서워. 아빠랑 같이 갔는데. 아빠가 다 지켜줄 텐데.”

 난 남편과 종혁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니, 아빠가 수상했어,

  아빠 그림자에 어깨가 점점 커지는 것 같고,

  그림자가 늑대로 보이는 것 같고,

  아빠가 늑대로 변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종혁이는 아빠를 늑대로 생각한 게 미안했는지 아빠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남편과 나는 빵 터졌다. 엉뚱한 상상하는 종혁이가 웃겼다.

 하지만 아이들과 좀 더 친밀해지고 싶은 남편의 노력이 두려움과 낯섬을 주었다는 게 안쓰러웠다.  


 여보~ 힘내요!  

당신은 최고의 남편이고, 멋진 아빠인 건 확실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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