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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Oct 13. 2020

난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2020년 현재

예준이는 11살이고, 종혁이는 9살이다.


 이제 해가 제법 짧아졌다. 밖에서 놀다가 6시가 넘어도 안 들어오던  녀석들이 5시 반이면 알아서 들어온다.

들어오자마자 씻으면 좋으련만 6시를 못 채우고 들어온 게 억울한지 꼭 그 시간까지 더 논다.

그때부터 나는 바쁘게 저녁을 준비하며 잔소리를 시작한다.


 “얘들아, 얼른 씻어. 먼저 씻고 더 놀아.”

 “네.”

 “얘들아, 얼른 씻으라고, 내내 밖에서 뒹굴었잖아.”

 “네.”

 “얘들아! 엄마가 씻으라고 했잖아!”

 “네.”


같은 말은 억양과 음량을 바꿔가며 몇 차례 반복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녀석들의 대답 소리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가끔 짧은 대답 속에 웃음소리가 약간 섞이기도 한다. 그러면  화가 치밀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오늘도 그랬다.

 “이 녀석들이! 당장 옷 벗고 들어가지 못해!”

 “네~.”

 이번엔 눈치를 살피며 대답을 길게 뺀다. 두 녀석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얼굴에 웃음을 한 가득 채우고, 빵 터져 버릴까 봐 그런지 서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후다닥 옷을 벗고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며 씻으러 들어갔다.

 씻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단 몇 분만에 다 씻었다고 물을 뚝뚝 떨어뜨리면 나왔다. 그런데 종혁이 몸이 이상했다.

 “뭐야, 씻은 거 맞아? 몸에 이게 뭐야?”

 “이거? 형이 그랬어.”

 종혁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예준이는 수건을 입에 물고 슬슬 뒷걸음질 쳤다.


 “아, 아, 아니. 나는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야.”


예준이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뻔뻔스럽고 당당하게 말했다.


 

 “난 큰 그림을 그린 거야. 이렇게.”

 예준이는 끝까지 천연덕스럽게 둘러댔다.


 그래, 그림이 살아서 움직이긴 한다만.

 “휴우, 다시 목욕탕에 들어가서 빡빡 지우고 와!”

 

 아이들은 낄낄거리며 다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만 혼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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