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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의 『대지』가 인생책인 이유

by 이미진

사람마다 인생책을 말할 때 떠올리는 기준이 다르지만,

펄 벅의 『대지』는 이상하게도 나이를 넘어 마음에 오래 남는 책이다.

10대에, 스무 살에 읽을 때와 서른 이후에 읽을 때, 그리고 누군가의 부모가 된 시점에서 다시 읽을 때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돌아오는 책.


나는 그 점이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1.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가장 ‘날것’으로 보여주는 이야기


『대지』는 극적인 반전이나 화려한 장면으로 독자를 잡아끄는 책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데인 듯 아려온다.

왕룽의 욕망, 집착, 사랑, 실패와 회복의 과정 속에는

인간이 삶에서 끝내 놓을 수 없는 근원적 욕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안정, 인정, 사랑, 소유…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대지’를 일구며 살아간다.


2. ‘성공’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드는 이야기


왕룽은 결국 부자가 되고, 많은 것을 얻는다.

하지만 성공이 커질수록 삶은 더 복잡해지고, 마음은 공허해진다.

사람과의 관계는 흔들리고, 지키고자 했던 것들이 서서히 손에서 미끄러져나간다.

우리는 종종 그 지점을 경험한다.

원하던 것을 얻었는데 기대만큼 행복하지 않은 순간.

가진 것이 많아졌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더 무거운 날들.

『대지』는 그때 메시지를 잔잔하게 던진다.


결국 우리는, 다시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3. 말보다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 오란


이 소설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인물은 오란이다.

말이 적고, 존재감이 크지 않지만 가족을 지탱하는 힘은 언제나 그녀에게서 나온다.

크게 드러나지 않는 헌신, 대단한 말 대신 조용한 실천으로 쌓아올린 사랑.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 쉽게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의 가치를 오란은 끝까지 잊게 하지 않는다.

이 인물을 통해 펄 벅은 말한다.


가장 빛나는 사람은, 때로 가장 조용한 사람일 수 있다고.


4. 사람은 결국 환경에 흔들리는 존재라는 사실


왕룽이 가난할 때는 검소하고 성실했지만, 부유해지자 욕망은 더 커지고 마음은 느슨해진다.

이 변화는 단순한 성격 묘사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을 비추는 거울 같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역시 환경에 의해 생각과 태도가 쉽게 흔들리는 시대다.

비교, 과잉 정보, 속도의 압박 속에서 내 본질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대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보여주고 있었다.


5. 읽을 때마다 다르게 완성되는 ‘성장형 책’


나는 『대지』를 인생의 시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책이라고 부르고 싶다.

젊을 때는 희망과 생존의 이야기처럼 읽히고

어느 정도 삶을 버텨본 후에는 경계해야 할 욕망의 이야기로 다가오며

나이가 들수록 돌아가야 할 자리를 보여주는 책이 된다.

한 권의 책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워지는 경험을 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6.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에 대한 한 문장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마음속에 이렇게 적힌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의 모든 욕망과 사랑이 바로 삶이다.

삶을 복잡하게 이해하려 할수록

이 소설은 우리를 다시 단순하고 본질적인 자리로 데려다 놓는다.

그래서 나는 『대지』를 인생책이라 부른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꺼내 읽게 되는, 흔들림을 잠재우는 이야기로서.



참고: [허연의 명저 산책] 펄 벅 `대지`

https://www.mk.co.kr/news/culture/5260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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