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식가보다는 막식가 스타일이다. 맛만 있으면 다 좋다. 베트남식이든 태국식이든 쌀국수는 다 맛있지만, 둘 중 하나를 반드시 고르라면 태국 쌀국수를 택하겠다. 내가 태국 쌀국수를 좋아하는 포인트는 세 가지다. 꾸덕꾸덕하게 느껴질 만큼 깊고 진한 육수, 고기부터 해산물까지 다양하게 추가할 수 있는 토핑, 그리고 에그 누들.
육수는 색깔부터 베트남 쌀국수보다 진한데, 그만큼 향도 세다. 시큼함과 고소함이 뒤섞인 향인데 나는 담백한 국물보다는 이런 자극적인 맛을 더 선호한다. 현지인들은 여기에 설탕과 후추 등 각종 향신료를 추가로 더 넣어 먹지만, 나는 피쉬 소스 하나면 충분했다. 국숫집 피쉬 소스에는 잘게 썬 태국 고추도 섞여 있어 매콤하게 먹을 수 있다. 토핑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부터 새우까지 다양한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어묵, 피쉬볼이다. 다른 것도 맛있지만 왠지 국수를 먹을 때는 피쉬볼이 토핑으로 딱 알맞은 것 같다. 일반적인 쌀국수의 양이 성인 남자 기준으로는 좀 적은 편인데, 피쉬볼을 비롯한 토핑 몇 가지를 추가하면 양이 딱 맞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의 최애는 에그누들이다. 국수를 먹을 때, 면 종류를 선택할 수 있는데, 방콕에서 먹은 면 요리 중 열에 아홉은 에그누들을 골랐다. 동남아 국가들에서 많이 먹는 에그누들은 중국식 보다 더 얇고 꼬들꼬들하다. 밥도 꼬들밥을, 라면도 약간 설익은 라면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 최적화된 면이다. 에그누들을 접하기 전에는 면 하나로 국수의 맛이 이렇게 달라질 줄 몰랐다. 태국에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에그누들을 비롯한 다른 면 종류에 도전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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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태국 음식 하면 팟타이와 똠양꿍을 떠올린다. 하지만 태국은 돼지고기를 가장 즐겨 먹으며, 돼지고기 요리가 일품이라는 걸 잊지 마시라. '카오카무'라는 족발 덮밥은 고기가 정말 부드럽다. 족발을 끓인 국물이 소스인데, 사실 이 소스에 밥만 비벼도 될 정도다. 마치 족발은 보너스인 느낌. 카오카무는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어 유명하다는 식당은 항상 줄이 엄청나다. 하지만 억울하지 않은 것이,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파는 카오카무도 충분히 훌륭하기 때문이다. 주문할 때 반드시 계란은 추가로 시키길.
다른 하나는 '무끄럽'이다. 통삼겹살을 기름에 튀긴 음식이다. 무끄럽이 국수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나는 무끄럽은 밥과 먹는 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왠지 한국인으로서 삼겹살은 밥에 먹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말이 있는데, 돼지고기를 튀기는 건 반칙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이 무끄럽은 삼겹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를 완전히 홀렸다. 무끄럽은 삼겹살에 대한 나의 이상향(?)이 현실로 나타난 요리다. 삼겹살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데도 삼겹살을 먹을 때면 내가 먹을 고기는 바싹 익혀 먹었다. 기름에 거의 튀겨질 정도로 삼겹살을 구웠는데, 이걸 통으로 튀긴다는 상상은 해보지 못했다. 이 정도면 무끄럽과 나의 만남은 운명이다.
음식이 국경을 넘어가면 그곳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바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직 방콕의 맛을 그대로 품은 태국 레스토랑을 서울에서 찾지 못했다. 목적지가 방콕이라면 음식 하나 때문에 간다는 게 결코 무모한 짓이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떠날 생각도 못 하는 지금, 몇 년 후 방콕에 가서 오랜만에 먹을 카오카무와 무끄럽이 얼마나 맛있게 느껴질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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