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키워드가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인생은 한 번 뿐이니,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뜻이다. 혹자는 이런 행태에 대해 소비만능주의가 도래한 것이라며 비판적으로 보았다. 반대로 세계 경제의 만성적 저성장이 굳어지면서, 젊은이들이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한 것이라며 씁쓸한 현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차곡차곡 적금을 모으던 나도 ‘이 돈 모아 봤자 어차피 서울에 집도 못 사는데’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퇴사도, 한 달 살기도 시도할 수 있었다. 웃프지만, 소시민이던 나는 희망을 버리고 나서야 새로운 길을 시도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욜로=절망’이라는 해석에 한 표를 던진다.
당신이 알아야 할 방콕 한 달 살기의 기술
내가 한 달 살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숙소다. 예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뿐 아니라 한 달 동안 가장 오래 머무를 공간이기 때문이다. 첫 방콕 한 달 살기 때는 다양한 숙소에서 머물러보았다. 호텔과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콘도, 그리고 일반 아파트였다. 호텔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는데, 호텔은 단기 여행에 최적화된 숙소이지 장기간 머물기에는 매우 불편한 곳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에어비앤비로 처음 예약한 콘도는 지금도 잊지 못할 최고의 숙소였다. 보통 콘도라고 불리는 콘도미니엄(Condominium)은 방콕에서 흔한 주거공간이다. 우리나라 오피스텔처럼 높은 빌딩에 원룸이나 투룸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 젊은 1인 가구나 커플이 주로 산다. 콘도에는 보통 공용 헬스장과 수영장 시설이 있고, 보안도 철저해서 방콕의 외국인이 선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월세가 만만치 않아서 방콕에서는 콘도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주거지로 인식된다.
한 달 머무는 외국인은 이런 콘도를 에어비앤비로 예약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방콕에 가기 전 숙소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다. 유튜브만 봐도 방콕 초호화 콘도가 월에 30~40만 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아다닌다. 방콕의 숙소를 이 잡듯 뒤진 경험에 비추어 추측해보면, 이런 곳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곳일 확률이 높다. 특히 지하철역 근처와 그보다 한참 멀리 떨어진 지역의 집값은 차이가 크다. 한 달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지하철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방콕에서 버스를 타는 건 빨리 포기하는 게 편하고, 매번 택시와 오토바이 택시를 타는 것도 요금이 만만치 않다. 나는 조금 비싸더라도 지하철역까지 도보 10분 거리를 숙소의 마지노선으로 삼았다. 혹은 값싼 콘도는 무언가 옵션이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옵션의 핵심은 주방과 세탁기다. 방콕 사람들은 집에서 음식을 직접 조리하지 않는다. 퇴근길에 음식을 포장해 가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다. 그래서 아무리 고급스러운 콘도라도 주방이 아예 없는 곳도 꽤 많다. 아니면, 주방은 있더라도 인덕션이나 전자레인지 등의 조리기구가 없을 수도 있다. 에어비앤비로 콘도를 예약하기 전에 미리 주인에게 주방은, 조리기구는 있는지 하나하나 물어봐야 한다. 세탁기 역시 주인에게 직접 확인을 해야 한다. 콘도라도 방 안에 세탁기가 없다는 걸 기본으로 봐야 한다. 그만큼 방콕에서는 집 안에 세탁기를 두는 게 흔치 않다. 그래서 방콕 길거리마다 흔히 볼 수 있는 게 코인 세탁기다. 나의 첫 에어비앤비 콘도에는 방 안에 세탁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 콘도와 아파트에는 모두 공용 코인 세탁기를 써야 했는데, 그제야 개인 세탁기가 있다는 게 얼마나 편한 것인지 느꼈다.
이보다 콘도를 예약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사항은 따로 있다. 바로 단속이다. 공식적으로 태국에서 에어비앤비는 불법이다. 다만, 경찰이 직접 하지는 않고 콘도 관리사무실에서 자체적으로 단속한다. 이것도 단속하는 콘도와 그렇지 않은 곳이 따로 있다. 주로 시내 중심가 근처의 콘도에서 엄격히 단속한다. 더 고급스러운 데다 지리적 위치가 좋으니 관광객에게 비싸게 에어비앤비를 돌리는 게 더 큰 이익이 되어서 그럴 것이다. 나도 시내 중심가의 콘도를 예약했다가 하루 만에 급히 숙소를 옮긴 적이 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콘도의 주인은 저녁 7시 이후에 입실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알고 보니 콘도 관리사무실 직원들이 퇴근하고 당직 한 명만 있는 경비가 허술한 시간대였다. 로비에 들어서자 곳곳에 에어비앤비 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최대한 몰래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커다란 캐리어를 끈, 누가 봐도 외국인 관광객인 나를 콘도 직원이 놓칠 리 없었다. 나는 끝까지 집주인의 친구인 척하며 전화를 걸어 상황 정리를 집주인에게 맡겼다. 다행히 방에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놀란 마음에 다음날 다른 숙소로 옮겨버렸다. 한 가지 팁이라면, 에어비앤비에서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방콕 콘도의 단속이 심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 그곳은 확실히 단속하지 않는지 물어보는 것이 좋다. 유사시에 주인이 직접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지도 확인을 받으면 더 좋을 것이다.
두 번째 방콕에서는 한 달 내내 같은 아파트에만 머물렀다. 콘도가 외관상 우리나라 오피스텔과 같다면, 방콕에서 아파트라고 부르는 곳은 우리나라의 빌라와 비슷한 모습이다. 콘도보다 건물 규모가 훨씬 작고, 수영장이나 헬스장 같은 부대시설이 없다. 큰길이나 지하철역에서 약간 떨어진 골목에 위치한 만큼 가격은 더 저렴하다. 이미 방콕의 호텔과 콘도에서 원 없이 살아봤으니, 싸고 조용한 골목길 아파트에서 지내고 싶었다. 이런 종류의 아파트 매물은 에어비앤비보다 ‘렌트허브(https://www.renthub.in.th/en)’라는 사이트에 더 많다. 이곳은 주로 방콕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월셋집을 구하는 사이트다. 방콕에 산다 하더라도 외국인은 언제 당장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연 단위로 계약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렌트허브를 통하면 한 달 월세 정도의 보증금을 내고 월 단위로 계약을 할 수가 있다. 이 사이트가 에어비앤비처럼 예약과 사후관리까지 도맡아주는 플랫폼은 아니다. 집 정보와 주인의 연락처, 주로 라인 아이디만 올라와 있다. 내가 주인과 직접 연락해서 계약해야 한다. 나는 급한 마음에 한국에서 한 달을 통으로 계약하고 보증금도 미리 보냈다. 그러나 집도 직접 보고, 더 안전한 거래를 위한다면, 처음 며칠은 호텔에서 지내면서 그 시간에 아파트를 직접 보러 다니는 게 좋을 것 같다. 집주인들은 언제든 집을 보러 와도 좋다고 했다. 아파트의 단점이라면, 대부분 주방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직접 요리를 해먹을 수 없었던 게 가장 불편했다. 그래도 정말 방콕 로컬들이 사는 동네에 머무른 기억에, 나는 아직도 내가 살았던 집이 방콕의 고향처럼 느껴진다.
'방콕에서 잠시 멈춤'을 출간했습니다.
더 생생하고 재미있는 방콕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492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