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o Oct 06. 2020

무지개 도시 방콕의 다양한 소수자 이야기

나는 방콕의 색깔을 무지개색으로 기억한다. 방콕에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외모의 사람들이 함께 산다. 삶에 지쳐 잠시만이라도 한국을 떠나고 싶었을 때, 주저 없이 다시 방콕을 선택한 것도 방콕의 무지개색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 속에 숨어 있으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안도케 했다. 물론, 나 역시 이 방코키안(Bangkokian)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방콕에 완전히 정착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도 방콕 생활에 익숙해지면서는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재미있었다. 지하철에서 각자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이 쏟아내는 수만 가지 언어를 들으며, 나는 방콕이 소수자 하나 없이 모든 인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미얀마 사람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는.           



조용하게은밀하게태국 사회를 지탱하는 한 축미얀마 노동자     


태국 내 가장 많은 수의 외국인은 미얀마인이다. 태국과 영토가 붙어 있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교류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는 미얀마의 노동자들이 태국에서 저임금으로 3D 업종 일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방콕의 건설 붐은 여전히 진행 중인데, 상당수의 건설노동자가 미얀마 사람들이라고 한다. 방콕의 골목을 지나가다 보면 새로 건물을 짓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골목길 옆으로 늘어앉아 쉬는 모습을 종종 봤는데, 이 사람들이 거의 미얀마인이라는 것이다.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 검문소 (출처: Wikimedia)


나 역시 외국인으로서 미얀마 사람들을 직접 마주할 기회는 없었다. 다만, 태국에 사는 미얀마인의 존재를 알고 나서 우리 집 아파트에서 일하는 소녀가 미얀마 사람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나는 지하철역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 안쪽 작은 아파트를 빌렸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소녀가 건물의 청소와 관리를 맡았다. 시간이 지나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할 때는, 짐이 많아 카드키를 꺼내기 어려운 나를 대신해 그녀가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내가 그녀를 미얀마 사람이라고 추측한 것은 아파트의 중간관리자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다. 아주머니의 빠르고 자연스러운 태국어에 비해 그 소녀는 누가 봐도 외국어라는 게 느껴질 만큼 더듬거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어린 나이에 다른 나라까지 와서 일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눈인사를 해주고, 항상 깨끗하게 청소를 해주는 그 친구가 고마웠다. 아파트 내에 자기만의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인지, 밖에서 출퇴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미얀마 사람들은 방콕에서 눈에 띄지 않게 다들 자기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다양한 성 소수자와 부대끼며 살아가는 도시     


방콕 관광객들이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이 바로 트렌스젠더 쇼다. 트렌스젠더는 이제 태국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만큼 태국에 트렌스젠더가 많을 뿐 아니라, 성전환 수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트렌스젠더들도 태국에서 수술을 받고 올 정도라고 한다. 방콕에서는 트렌스젠더뿐 아니라 게이나 남장 여자, 여장 남자 등 수많은 성 정체성의 사람들을 마주친다. 누가 봐도 여장 남자인 ‘꺼터이’가 식당에서 서빙 하고, 자신의 직장 동료가 게이라는 것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남장 여자를 뜻하는 ‘텀’과 그를 둘러싼 두 여성의 삼각관계가 친구들 사이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이렇게만 보면 태국에 유난히 성 소수자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 미얀마와 오랜 전쟁을 치르느라 남자가 많이 죽은 탓에 모계사회가 되었고, 그 때문에 여성성을 더 선호하게 되어 게이가 많아졌다는 설이 있다. 혹은 태국의 관광산업이 발달하면서, 경제 활동을 하기에 여성이 더 유리해서 그렇다고도 하고, 고수인 ‘팍치’가 정력을 감퇴시켜서 그렇다는 설도 있다. 이런 설은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통계상으로는 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성 소수자의 수가 많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제3의 성을 가족이나 친구,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냐고 묻는 한 설문조사에서 태국인들의 80% 이상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확실한 것은 태국인의 관용 정신은 이들을 절대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방콕에서도 성 소수자들이 완벽하게 존중받는 건 아니다. 게이나 트렌스젠더 출연자가 TV 쇼에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도 그들을 놀리는 일이 다반사다. 외국인인 내가 좋아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했는지, 현지 친구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진짜 여성일지, 아니면 트렌스젠더일지 맞혀보라고 하는 일도 많았다. 자신들은 쉽게 구분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아직 이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 소수자들을 배제하지 않고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환경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다면, 일상에서 쉽게 그들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들을 포용하는 감수성도 더 높아지지 않을까.           



'방콕에서 잠시 멈춤'을 출간했습니다. 

더 생생하고 재미있는 방콕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492748


이전 05화 방콕 한 달 살기, 그리고 노마드의 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