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열등감과 딜레마에 빠졌다. 몇 년씩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넘쳐난다. 어떤 여행자는 온갖 고난을 겪으며 오지를 탐험하기도 하고, 심지어 원주민과 부대끼며 살아보기도 한다. 또 다른 이는 해외 도시에서 몇 달을 지내며 수많은 현지인 친구를 사귄다. 고급 호텔과 리조트의 멋진 배경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여행자도 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의심스러웠다. 나의 여행법이라는 건 정말이지 특별할 게 하나도 없었기에 열등감에 빠지기도 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나는 에어비앤비를 사랑한다. 호텔 방은 대부분 비슷한 구조이며, 휴식에 최적화된 공간이라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뭔가 불편하다. 에어비앤비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사람이 ‘진짜’ 사는 곳이다. 호텔만큼 반짝거리게 깔끔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이런 집은 내가 이곳에서 생활한다고 느끼게 한다. 앞집도, 옆집도 모두 현지인이고, 집 밖을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자주 가는 시장이나 마트, 세탁소와 빨래방이 있다. 어릴 때부터 꿈꿔온 다른 나라에 사는 꿈을 에어비앤비 숙소를 통해 나는 경험할 수 있었다. 나의 여행법이 특별하지 않아 보였던 건 현지인처럼 그냥 일상을 살아보는 여행이기 때문이었나보다.
동네 골목길을 걸어본다. 걸어봤자 동네 근처니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괜찮다. 나는 길을 잘 아는 편이라 그냥 걸으면 본능적으로 큰길을 찾아버린다. 그래서 최대한 샛길로 빠지려고 집중한다. 뒷골목을 가야 정말 방콕 사람들이 사는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방콕의 뒷골목은 초라하다. 고작 이십여 분 정도 걸어 들어갔을 뿐인데 큰길 옆 높은 고급 콘도와 엄청나게 비교될 만큼 열악한 모습이다. 걸을 수 있는 인도 하나 제대로 없고, 쓰레기는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방콕에는 골목마다 수로가 많은데, 썩은 물과 쓰레기가 뒤엉켜 있다. 그래도 곳곳에 펼쳐진 작은 길거리 식당은 정겹다. 동네 개들이 곳곳에 자리를 펴고 낮잠을 자지만, 사람도 개도 서로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들이 골목에 삼삼오오 모여 노는 건 세계 어디나 똑같은 것 같다. 이게 진짜 방콕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다. 비록 깔끔한 환경은 아닐지라도, 그런 방콕의 민낯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이들의 삶을 영영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에어비앤비의 카피는 나의 평범한 여행법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3박 4일, 3박 5일 도깨비 여행을 할 때는 살아보는 여행이 특별하다는 걸 몰랐다. 생각해보면 평범한 직장인은 일주일 남짓 휴가를 내기도 어렵다. 겨우 쥐어짠 3~4일의 여행에서 여행지의 일상을 둘러볼 여유는 없다. 우리는 이 여행도 경쟁하듯 최대한 많은 것을 열심히 둘러보고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방콕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니는 여행자들을 보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나는 방콕의 일상을 사는,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한 여행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요즘 명상을 배우고 있다. 명상에서는 내가 호흡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생각을 했을 때 ‘아, 호흡에 집중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보다,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다른 생각을 하는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라고 한다. 현지인처럼 살아보기, 글쓰기, 역사 공부하기, 서점 가기. 이 모두 특별할 것도 없는 여행법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나는 이 특별할 것 없는 여행법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사회의 규칙을 따라 흘러간다. 잠시 짬을 내서 떠난 여행이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여 보길 바란다. 여행에서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내가 본 방콕과는 전혀 다른 당신만의 방콕을 만날 것이다. 방콕은 모든 가능성이 열린 도시이자, 누구든 포용하는 도시니까.
'방콕에서 잠시 멈춤'을 출간했습니다.
더 생생하고 재미있는 방콕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492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