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에 처음 태국 땅을 밟았다. 택시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가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건물 곳곳에 걸린 왕의 사진과 초상화였다. 심지어 어떤 건물은 벽면 한쪽을 왕의 초상화로 도색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왕이든 최고지도자든, 누군가의 사진을 도시 여기저기 걸어놓은 나라는 태국이 처음이었던 듯하다. 사실 처음엔 새로 즉위한 왕의 얼굴도 제대로 몰랐다. 온통 황금색으로 수 놓인 그림에서 그가 왕일 것이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태국사람들이 새 국왕을 꽤 좋아하는 줄 알았다.
분노의 시작, 새 국왕의 스캔들
처음 태국에 갔을 때만 해도 여전히 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쉬쉬하던 분위기였다. 여전히 태국에는 왕실 모독죄가 있고, 외국인도 예외 없이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현지 친구들은 조용한 목소리로 현 국왕의 기행과 소문에 대해 말해주었다. 외국에서 정체불명의 여인과 괴상한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진이 파파라치에 찍힌 적도 있다. 자신의 애완견 생일 파티에서 세 번째 부인에게 반라로 바닥에 엎드려 생일 케이크를 먹게 한 사건도 충격이었다. 사생활이라지만, 이혼만 세 번째다. 보수적인 태국 사회에서 여성 편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최근에는 네 번째 부인과 후궁 사이의 스캔들로 시끄러웠다. ‘왕의 배우자’라는 칭호를 주면서 후궁을 들였지만, 얼마 후 그녀의 모든 지위를 박탈해버린다. 그리고서는 다시 복권을 시키는데, 언론은 왕비와 후궁 사이에 암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순둥이 방콕 시민들의 분노
두 번째로 방콕을 찾은 게 2020년 1월이었다. 일 년 사이에 국왕에 대한 여론이 훨씬 나빠졌다. 이제는 친구들이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도 않고 왕을 욕하기 시작했다. 일 년 만에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서 오히려 내가 말조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쉬쉬할 정도였다.
타오르는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이 있었다. 레드불 가문 손자의 뺑소니 사건이었다. 레드불 가문의 손자인 오라윳 유위티야가 2012년에 음주운전 뺑소니로 오토바이를 탄 경찰관을 치어 죽였다. 하지만 그는 보석으로 풀려나 해외로 도망갔고, 정부가 조직적으로 이 사건을 무마하려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 사건이 최근 다시 회자 되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코로나가 급속히 퍼지자, 국왕은 수십 명의 후궁과 함께 독일로 떠났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관광 수입이 뚝 끊겼는데, 왕은 민생에 관심도 없이 도망가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2020년 8월, 방콕의 인문사회과학 명문대인 탐마삿대 학생들이 먼저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다. 여기서 그간 금기시되었던 왕실 개혁 요구가 나왔다. 진정한 입헌군주로서 왕실이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위대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퇴진, 개헌, 군주제 개혁, 세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사회
나는 태국 시민들이 성역으로 여겼던 권위에 도전한 것이 가장 기쁘다. 처음 이 나라의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답답한 마음이 컸다. 미소의 나라답게 원래 국민성 자체가 친절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항상 과하게 느껴지는 친절함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약간 불편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하이쏘의 정점에 있는 왕을 대놓고 험담한다. 이들이 권위에 도전했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한다. 시민들이 우리에게 왕이 왜 필요한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는 점이 혁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모든 방콕 시민이 느끼길 바란다. 다시 방콕을 찾았을 때, 그들의 미소와 친절함이 자신을 낮추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나는 방콕 시민들이 자신이 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는 자부심에서 나오는 미소를 보고 싶다. 그날을 위해, 태국의 민주화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방콕에서 잠시 멈춤'을 출간했습니다.
더 생생하고 재미있는 방콕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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