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배고픔에 직면하기

뇌와의 전투

아킬레스를 치료하기로 하면서 달리기를 자제하고 있다. 그래도 달리기가 하고 싶어 조금이라도 나았난 싶은 생각이 들면 뛰었다. 뛸 때는 괜찮은데, 뛰고 난 다음 날은 뛴 강도와 거리에 따라 통증이 차이가 있다. 그래서 지금은 왠만하면 뛰지 않고, 완치까지 가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러너에게 달리기를 참는 것은 쉽지 않다. 축구도 그렇고. 그래도 회복을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 


먹는 것은 그대로인데, 달리지 못하니 체중이 점점 늘어났다. 달리기를 많이 할 때는 맘껏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 두 달 정도는 더 치료해야 하니, 식이조절이 필요하다. 

식이조절은 아내가 하고 있는 간헐적 단식. 16:8. 회사 점심시간인 11:30분부터 집에서 저녁을 먹는 7:30까지, 이 사이에만 음식을 먹고 나머지는 공복 상태를 유지한다. 이전에는 아침 식사는 꾸준히 챙겨먹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아침식사를 거르고 있다. 


처음 며칠은 할만했다.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샌가 부터는, 특별히 퇴근길에는 머리에 온통 먹을 것 생각이 가득하다. 그러다가 이제는 오전 10시가 넘는 시점부터 첫끼를 먹을 때까지, 오후 3~4시 시점에도 계속 먹을 것 생각이 난다. 뇌가 아마도 단단히 뿔이 난 것 같다. 


회사에서 집에 걸어가는 퇴근길 1시간 20분은 내적전쟁의 시간이다. 일단, 회사를 나서면, 북창동 뒷거리의 무수한 음식점들을 통과해야 한다. 맛집들이 즐비하고 그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그리고 을지로 지하철로 연결되는 지하로도 들어가면 음식점들이 있는 지하상가들을 지나고, 지름길인 롯데백화점 지하 푸드코트를 통과해서 지하도를 나오면 2~3분만 가면 청계천으로 갈 수 있다. 가장 유혹이 강한 곳은 롯데 지하 푸드코트. 처음에는 몇 번이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음식 냄새와 맛있게 보이는 사진, 음식의 디스플레이, 행복하게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 난 배고프다. 그렇게 잘 참아내고 청계천으로 들어서면 눈 앞의 음식 유혹은 없어진다. 그렇지만 이제는 머릿속에서 온갖 음식이 떠오른다. 어떤 때는 한 시간 내내 음식 생각을 하며 걷는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뭐 먹을까. 어떻게 요리해서 먹을까. 


이제는 배가 고파지는 시간이 많아져서 배고픔을 묵상해 본다. 사실 영양분 측면이나 칼로리만 본다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뇌에서는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처럼 난리다.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음식을 허겁지겁 먹게 된다. 나의 모습을 본다. 꼴 사납다. 꼴랑 밥 좀 늦게 먹는다고 이렇게 교양이 없을 수가. 


배고픔에 직면하자. 나의 뇌는 죽을 것처럼 발악한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자. 나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바라보자. 나의 몸의 감각을 느껴보자. 가벼운 손의 떨림. 먹잇감을 찾아 헤메는 하이에나 무리들의 눈 빛. 


이제 눈 앞에 음식이 보이면 잠시 바라보자. 나의 뇌는 흥분한다. 나의 의식은 '아직은 아니야' 라고 조용히 그렇지만 단호히 명령한다. 그리고 천천히 음식 한 입을 넣는다. 천천히 씹는다. 입안에서 다 없어질 때까지 다음 음식을 넣지 않는다. 정말 음식 맛이 살아있다. 예전에는 입안에 음식을 채워서 음식전체의 맛이 아니라, 입안 음식 덩어리 중 혀에 닿는 부분만의 맛을 느끼고 목구멍에 넘겼다면, 지금은 음식 전체의 맛을 충분히 느끼고 넘긴다.  천천히 식사를 한다. 뇌는 소리친다. 빨리빨리. 이 느낌이 들면 다시 음식을 바라보고 기다린다. 뇌의 소리가 잦아들면 다시 한 입을 넣는다. 오늘은 이겼다. 


이 전투에서 승률은 아직 낮다. 많은 경우 전투가 끝난 다음에야 내가 졌다는 것을 인지한다. 어떤 때는 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그러면서 이제 점점 싸우는 법을 알아간다. 이 싸움에 이길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한다.



나의 뇌는 최선을 다해 살 길을 찾는다. 

나는 그런 뇌를 인정하고, 그 노력이 감사하다.

그렇지만 나는 의식을 선택한다. 본능을 넘어선 나의 의식적 삶을 선택한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전쟁을 매일 치루어 간다.


나는 나의 본능의 뇌를 다루어 간다.

작가의 이전글 생활관리시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