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채소롭게> 냉이
그제서야 알았다. 긴긴 겨울 동안 왜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회사에서 하는 일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반복적인 단순 업무에 가까웠다.
채소를 다루는 것은 회사에서 하는 일과 아주 다른 성격의 일이었다. 지금이 봄인지 여름인지 채소를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고, 채소를 만지면 실재하는 생명을 마주하는 생동감이 있었다. 채소 본연의 자연스러운 맛을 살리며 만든 요리를 먹는 일은 현실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내 손으로 만들어 내는 감각이었다.
일상에서 채소를 마주하는 일은 단순히 좀 더 건강하게 먹는 것과는 달랐다. 기존의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온
전하게 시작부터 끝까지 만들어 가는 감각’이었다.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이 극히 일부분이라면 채소를 사러 가고, 고르고, 손질하고, 요리하고, 플레이팅을 하고, 사진 찍어 SNS에 올리는 일은 스스로 독립적인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일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회색빛 무채색 일상에 총천연색 화면이 켜진 것만 같았다. 실제로 채소의 색이 그만큼 다채롭기 때문에 밥상의 색채도 다양해졌다.
집밥이란 단어 앞에는 자주 ‘소박한’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하지만 채소에 관심을 가진 후로 채소와 함께하는 집밥은 절대 소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물 하나만 먹어도 나물의 향, 들기름, 간장이 어우러진 완벽한 조화가 밥알 과 함께 입안에 감돈다. 이 맛이 어떻게 케이크보다 소박할 수 있을까. 물론 빵도 과자도 케이크도 좋아한다. 채소의 매력은 그보다 낫거나 못한 문제가 아니다. 채소 하나만으로도 온전히 맛있고, 채소 한 가지로도 다양한 맛과 식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채소와 함께하면서 내 일상으로 계절이, 다양한 색이, 자연의 기운이, 자극적이지 않은데도 기억에 오래 남는 맛들이 들어왔다. 조금씩 채소를 더 가까이하면서 나의 생각과 행동도 변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일을 대하는 마음, 미래에 대한 생각, 쉬는 날 하고 싶은 일들이 바뀌었다. 그 과정을 놓치기가 아쉬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어쩌면 그 변화 과정의 일기다.
** 4월 5일 식목일에 출간된 저의 첫 책, 채소 에세이 <매일매일 채소롭게>의 일부입니다.
책의 내용 중 10개 꼭지를 골라 조금씩 소개하려 합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9028342?OzSran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