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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pr 15. 2021

버릴 것 없는 하루

<매일매일 채소롭게> 양파

좋은 재료는 버릴 게 없다. 양파 껍질로 만든 채수는 표고나 다시마 채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양파 특유의 단맛이 껍질에서 더 진하게 우러난다. 그래서 단맛을 내는 요리에 쓰면 좋다. 한 가지 문제라면 양파 하나에서 나오는 껍질의 양이 적다는 것. 계속해서 모으고 또 모아야 한다. 모으는 김에 다른 채소의 껍질과 뿌리까지 골고루 모으다 보면 어느새 수집 활동 자체에 열을 올리게 된다. 부추나 양배추처럼 버릴 것 없이 먹을 수 있는 채소를 다듬는 날에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뿌듯하면서도 오늘은 모을 것이 없다는 점이 아쉽기도 하다.

채소를 버릴 것 없이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채우장에 다녀오고 나서부터였다. 채우장에는 일회용품이 없다. 모두 각자의 장바구니와 용기를 들고 가서 장을 본다. 하지만 요즘은 동네의 과일 가게도 과일을 하나하나 랩에 싸 두거나 심지어 먹기 편하게 조각조각 자른 것을 플라스틱 박스에 넣어 판매하기도 한다. 포장되지 않은 채소와 과일을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당장 저녁에 먹을 채소를 사러 차를 타고 시장에 갈 수도 없고, 채우장에 갈 때마다 다음 장이 열리기 전까지 먹을 한 달 치의 재료를 살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용기 내어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어느 카페의 ‘#용기내’ 캠페인을 보고 무릎을 쳤다. 카페의 디저트를 손님이 가져온 용기에 담아 주겠다는 캠페인이었다.) 비닐에 든 토마토 앞에 ‘한 봉지 1만 원’이 적혀 있고, 그 옆의 상자에는 아직 비닐에 담기지 않은 토마토가 쌓여 있었다. 숙련된 가게 사장님의 재빠른 손놀림을 뚫고, 손으로 상자 속 토마토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장님, 저… 토마토 여기에 담아 주실 수 있나요?”

그 뒤로 기회가 될 때마다 용기를 내보였다. 이미 포장을 해 버려서 그냥 받아 온 적도 있고, 채소나 일부 과일은 가게에 오기 전부터 포장이 된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하다 보니 어느 가게에서 어떤 채소를 포장 없이 살 수 있는지 정보가 축적되어 이전보다 수월하게 버릴 것 없는 장보기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포장 없이 사 온 식재료를 용기에 넣어 둔 채로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는다. 생활쓰레기를 많이 줄이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노력하니 분리배출 날에 버려야 할 쓰레기가 줄어들었다.

양파 껍질을 모으고, 장을 볼 때 용기 내 용기를 내밀고, 물건을 아껴 쓰고, 과하게 포장된 물건보다는 단순한 물건을 고르면서. 버릴 것 없는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내 안에 무언가가 채워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알아 간다는 느낌이었다. 포장 안의 알맹이를 살펴보게 되고, 껍질과 뿌리도 그 쓰임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스스로도 버릴 것 없이 쓰이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겉치레가 아니라 알맹이가 단단한 사람, 군더더기 없이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




** 4월 5일 식목일에 출간된 저의 첫 책, 채소 에세이 <매일매일 채소롭게>의 일부입니다.

책의 내용  10 꼭지를 골라 조금씩 소개하려 합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9028342?OzSra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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