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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Jul 28. 2022

my blue valentine, 음악과 글쓰기

내가 가장 영감을 받는 순간은 음악을 들을 때다. 음악을 들으면 머릿속에서 문장이 떠오른다. 음표와  함께 단어가 배치되고 연결되고 물 흐르듯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늘 음악을 듣다가 글을 쓰곤 했다. 20년도 넘은 오랜 취미다.​


언젠가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탄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죄다 자장가 같은 음악만 주구장창 듣는구만.” 트로트를 좋아하는 아빠에게 내가 좋아하는 잔잔한 연주곡은 잠을 부르는 노래였지만 나에게 그 음악들은 순식간에 꿈을 꾸게 하고, 마음을 춤추게 하는 격동의 뮤즈였다.​


my blue valentine 채널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었다. [눈이 내린다. 밤의 끝이 하얘졌다] 이 플리를 만드는 사람은 음악으로 소설을 쓰는 것만 같다. 가만히 앉아서 밤새도록 이런 노래를 듣는 게 좋다.


​https://youtu.be/4Ei4dHzLiDE



스무 살 때는 새벽에 enrio moriconne의 love affair 를 3시간 동안 듣기도 했다. 이소라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를 잠들 때까지 들은 적도 있다. 고요하고 적막하고 처절하고 새하얗게 질린 아름다운 노래들. 정말 좋다.​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글은 소설이었다. 초등학생 때 쓴 첫 작품도 소설이었다. 꿈속을 헤매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내 이야기였다. 열두 살 때는 어린이 드라마 공모전에 시나리오를 출품했다. 제목은 “슈팅스타”였다. (당시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슈팅스타에 단단히 빠져있었다)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난 주인공의 인생 대서사시였는데, 대차게 탈락했다. 내 이야기였다. 대학시절, 신춘문예에 글을 보내고 싶었는데 도저히 써지지 않아 포기했다.​


작년 봄, 첫 책으로 에세이를 펴냈다. 다시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두 달 동안 소설 쓰는 법 책을 여러 권 읽고 플롯을 짜고 몇 편의 단편 소설을 썼다. 다시 읽어보니 소설이 아니라 그냥.. 내 이야기였다. 에세이와 자전소설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나는 왜 나밖에 못 쓸까? 김초엽 작가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창조해 SF 소설의 빛이 되었는데, 왜 나는 현실 세계에서조차 내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걸까. 이런 생각으로 한없이 우울했었다. 지금은 안다. 나는 나를 쓸 줄 아는 재주가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알면서도 왜 소설을 쓰고 싶을까? 빨래를 널다가 정세린의 purple forest 를 들으며 알았다. 노래가 흘러나오자 순간 어떤 상황이 떠올랐다. 기시감이 들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 장면은 낯설었다. 경험한 게 아니라 만든 기억이었으나 만들어낸 기억에 기시감을 느끼는 감각이 익숙했다. 아… 이거였어! 다른 내가 되는 경험.​


나를 쓰는 글은 나를 똑바로 마주하게 한다. 덕분에 정신없는 흘러가는 세상에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다. 글은 온전히 나로서 살 권리를 되찾아준다. 동시에 나로 살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허용한다. 그것이 소설 아닐까? 내게는 이런 환상이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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