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에서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누군가 하면 가장 직급이 높은 사람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이 법칙이 깨진 적이 거의 없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이 힘이라고 생각했다. 이 법칙을 뒷받침하듯 크고 작은 사건 속 피해자들에게는 대체로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거나 틀 안의 답을 요구할 때가 많았다.
나보다 어린 동료와 일하면서 이 법칙이 언제나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 사이에는 직급과 나이처럼 명백하게 보이는 힘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다른 힘도 있었다. 마음의 힘이다.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들이 가진 보이는 힘을 존중하는 동시에 단단한 마음의 힘으로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안다. 정작 눈에 보이는 영향력을 가진 상사들이 그 힘에 걸맞지 않은 흐물한 마음의 힘을 드러내며 스스로를 내려 보일 때가 많다.
기억에 남는 후배 중에 Y가 있다. 그가 팀에 오기 전부터 팀원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아빠가 모 대기업 임원이라더라'는 별로 자극적이지 않은 소문이었다. 아빠가 회사 대표도 아니고, 재벌도 아니고 다른 회사 임원이라는 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였다. 평범한 우리보다 아주 조금 여유롭게 사는 그 정도의 사람들은 늘 주위에 있으니까. 신혼집이 강남 한 복판 30평대인 S 대리, 부모님 두 분 모두 의사인 H, 새로운 명품 가방이 자꾸 어디선가 나오는 J, 어딜 가나 한두 명쯤 이런 사람들은 꼭 있다. 내가 아닐 뿐.
Y가 특별하다고 느낀 것은 그가 여름휴가 때 가족들과 함께 긴 유럽 여행을 다녀온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말 아닌 것은 아니었지만. 살면서 우리 가족은 해외여행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함께 가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가족 여행은 언제나 강원도였다. 그나마 가장 멀리 가본 여행지는 아빠 환갑 기념 여행으로 언니와 내가 반씩 경비를 낸 제주도였다. Y는 아무렇지 않게 부모님이 여행 경비를 대는 해외여행 계획을 이야기했다. "저는 미술관은 별로 안 가고 싶은데 어쩌겠어요. 돈 내는 분이 가고 싶다고 하시니까 따라가야죠. 그래도 부모님이랑 같이 가면 몸만 따라가면 되니까 이득이죠, 뭐."
평소에 Y와 일을 하면서 그와 내가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봤자 같은 회사를 다니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다르면 뭐가 얼마냐 다르겠냐고 말이다. 그러나 가족 해외여행이라는 똑같은 주제를 앞에 두고 한쪽은 경비 걱정을 하고 한쪽은 대충 맞춰주면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차이는 걱정과 이득 사이 거리만큼 벌어져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 정도 걱정이야 아무렇지 않은 척 감출 수 있으니까.
우리의 진짜 차이를 알게 된 것은 그와 일한 시간이 좀 더 쌓인 이후였다. 그와 함께 있을 때 늘 말을 더 많이 하게 되는 내가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화 사이 잠깐의 침묵이 생길 때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머릿속을 풀가동하며 섣부른 프로세싱 끝에 말을 꺼내는 건 대개 나였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을 텐데, 나이도 연차도 내가 더 많은데 조급함은 왜 항상 내가 안고 있었을까. 그는 밝고 경쾌한 사람이었지만 말로 앞서 나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침묵이 길어지면 그도 적절한 대화 주제를 찾아내 나에게 건넸을 것이다. 그는 누가 물어도 '그 사람 괜찮지.'라는 답을 할 만큼 매너와 센스, 세심한 배려를 갖춘 사람이었으니까.
사람들은 어떤 자리에 앉은 사람이 아니라 자리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을 보며 그 자리가 그의 것이라고 인정한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을 가지고 있다는 감각이 주는 느긋한 태도는 그 자체로 자리를 증명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없고 Y에게는 있는 것은 돈도, 대기업 임원 아빠도 아닌 그 태도였다.
그는 '말할 권리'를 남용하며 말부터 앞서는 상사들과 달리 '말하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키지 않을 때 편한 대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는 게 아니다. 언제나 '말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같아 보였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매일 비싼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과, 비싼 위스키를 얼마든지 마실 수 있지만 위스키 한잔이 필요할 때 적당히 마시는 사람의 차이랄까. 그때부터 품위 있는 상사의 권위는 '말하는 힘'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든 말할 수 있고, 자신의 말에 힘이 실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언제나 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을 보면 천천히 대화 주제를 고르던 Y가 떠오른다.
그때부터였을까. Y를 따라 하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을 가진 척하기로 했다. 가진 척을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태도를 만드니까 시간이 쌓이면 나의 '조급하지 않은 척'은 자연스럽게 '느긋함'이 되어줄 거라고 믿으면서.
스피치 전문가 박미건 대표의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조급하지 않은 척' 하는 법 영상을 보게 되었다. 박 대표는 '3초 기다리기'를 제안했다. 3초는 긴 시간이 아니지만 의외로 말을 꺼내기 전에 생각 정리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불쑥 건네받은 생각지 못한 질문에 바로 답을 하려다 보면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다가 원치 않은 실수를 하기 쉬운데, 그 횡설수설 생각의 흐름을 머릿속으로 충분히 정리한 후에 말하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듣고 회사에서 동료와 대화할 때, 남편과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 급한 마음에 말부터 꺼내놓지 않고 속으로 '3초'를 세며 기다려봤다. 빨리 대답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을 잠시 내려놓고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저 사람이 왜 이걸 물어봤을까? 원하는 답이 있는 걸까?' 생각해 봤다. 몇 번 해보니 말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은 상대를 위한 것도 나를 위한 것도 아닌 그냥 압박감이라는 감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써 잘 보이려 하지 않고, 굳이 좋은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금 하면 좋을 말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의외로 적당한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히려 그렇게 나온 말이 좋은 대화를 만들기도 하고,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여유로움은 내가 무엇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뭔가를 갖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