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리추얼 메이트 이랑님의 추천으로 [나혼자 산다] 이유진 배우 에피소드를 보게 되었다.
그는 보증금 5백만 원에 월세 35만 원의 반지하 자취집을 공개했다. 아르바이트로 공간 철거 작업을 하며 조금씩 돈을 모아 직접 인테리어를 하고 집을 꾸몄다고 한다.
반지하에 무슨 카페트야?
반지하에 무슨 조명이야?
'반지하에 무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저는 사는 공간이 너무 허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환경이 변하면서 성격도 함께 변하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 눈 뜨면 보이는 풍경이 허름한 벽지와 콘크리트라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지금 보이는 것들을 바꿔야 나의 내일이 변하겠구나, 싶었어요.
1년 동안 작품이 들어오지 않아서 힘들어하다가 철거 알바를 했어요. 그건 일당으로 받거든요. 모아서 카페트 하나 사고, 선반 하나 사고 그래서 인테리어 완성까지 오래 걸렸어요. 저한테 가장 의미 있는 시간에 완성된 공간이라 이 집만큼 소중한 곳이 없어요.
철거 일을 하면서 좋았던 건, 확신을 얻었어요. 버틸 수 있겠다. 그때부터 단단해진 것 같아요.
가장 좋았던 말은 마지막, "버틸 수 있겠다."였다. 스스로 선택한 배우 일을 지속하기 위해 철거 노동을 했고, 이 방식으로도 “지속해 보자, 더 가보자,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독려할 줄 아는 마음이라니. 그래서 단단해졌다고 말하는 게 참 멋졌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고 그래서 회사원이 된 나에게 배우나 작가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며칠 전, 잠을 뒤척이다가 메모한 문장이 있다.
"일이란 독립된 한 개인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일의 의미를 다시 세우기로 결심한 밤이었다. 이렇게 정의하고 나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의미가 있었다. 무의미한 반복처럼 느껴지는 회사일도, 좋아하는 마음은 있지만 돈이 되지 않는 글쓰기도, 도대체 왜 이렇게 진심인지 스스로도 모르겠는 밑미 리추얼까지 모두 다.
나에게는 이 모두가 독립된 한 개인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자원을 확보하는 일인 셈이다.
나의 일은 이 [일-들]의 총합으로 완성된다.
신혼집으로 이사 온 지 한참 후에야 열심히 집을 꾸몄다. 한동안 '전셋집에 무슨...!'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최고요 작가의 책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를 읽고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커튼을 달고, 몸에 맞는 책상을 들였다. 방 한편에 좋아하는 차를 가득 쌓아두었다. 서재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춘 이후로는 신기하게도 카페에 가지 않게 되었다. 서재를 창고로 쓰던 시절에는 집이 아닌 카페에 가야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내 책상에 앉아야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머무르는 곳이 내 집이라는 최고요 작가의 굳센 말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면 신혼집에서 무려 7년을 살았다.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꾸밀 걸, 싶다가도 이제라도 내 집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싶다. 아니 그보다 이렇게 오랫동안 무탈하게 세입자로 살 수 있게 해 준 집주인에게 감사하는 게 먼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