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 Oct 01. 2023

명상보다 먼저 해야 하는 것

"명상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이 질문을 요즘 자주 받는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누군가에게 명상을 가르쳐줄 만큼의 단계는 아니다. 명상이 무엇인지 감각으로 느끼고 있고, 명상을 할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지금 명상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기로 한 이유가 있다. 나중에 명상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지금의 혼란스러운 [명상 시도] 단계를 잊을 것 같아서다.


미래에 명상을 자유롭게 하게 된 이후에도 크고 작은 혼란과 고통은 여지없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과거에 비해 얼마나 초연하게 고통을 마주하고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는지 스스로 기억하기를 바란다.


누군가 나에게 명상이 물아일체 같은 것이냐고 물었다. 반대다. 내가 감각하는 명상은 [유체이탈] 같은 것이다.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나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유체이탈하듯 나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우리의 삶이 트루먼쇼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문을 열고 나오면 진짜 세계가 나타나고 우리가 사는 이 삶은 마치 잘 짜인 연극과도 같다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억울함, 수치심, 분노, 화에 빠져 있을 때 빠져나올 수 있다. 지금 이 상황은 연극의 한 장면이고, 나는 마음을 다해 연기를 하는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나라는 역할에 온전히 몰입해 있다. 하지만 Cut! 사인과 함께 그 감정과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복잡하게 엉켜있는 빨랫감이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것을 세탁기 밖에서 바라보는 것. 그러려면 아주 중요한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Should be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나는 행복해야만 해.

저 사람은 나를 존중해야 해.

나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해.

나는 성과를 내야만 해.



여기서 벗어나려면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한 거짓 믿음에 맞설 줄 알아야 한다.


상사에게 인정받아야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일정 수준의 월급을 받아야만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야 무리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 수 있다.


정말 그런가? 뭐,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거짓 믿음을 믿으면 믿을수록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방향을 상실하고 모든 일에 지나치게 애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 뭐가 문제냐고? 일을 그르치게 된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이 악물고 하게 된다. 그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살아도 되는데 안간힘을 쓰고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렇게 잔뜩 힘이 들어간 사람 곁에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무섭다. 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큰일이 날 것만 같다. 그래서 긴장하게 되고 결국 실수를 한다. 역시 그 사람은 화를 낸다. 그 사람과 일을 하는 게 힘이 든다.


이러한 원리로 모든 좋은 기회와 관계가 단절된다. 결국 존중받기 위한 모든 노력은 존중받지 못하는 결과로 끝난다.


삶의 모든 제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갖고 싶지 않은 옵션이 오더라도 흔쾌히 받아 들어야 한다. 사실 그 안에 원하던 것이 숨어 있다. 원치 않은 상황의 파도 위에서도 나의 서핑 보드에 올라 나의 속도로 파도를 타면 된다.



거짓 믿음에 맞서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 결국, 이 진부한 질문이다. 타인의 욕망이 아닌 온전히 나의 욕망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그것을 갖기 위한 의도를 세워야 한다.

의도를 세우는 일은 시간을 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글을 쓰고 싶다면 글 쓸 시간을 내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하고 실행해야 한다.

모임을 정리할 것인지, 출퇴근 시간을 활용할 것인지, 야근하지 않는 회사로 옮길 것인지

시간을 낼 방법을 찾고 시간을 내야 한다.


인생의 모든 번민은 욕망만 있고 의도는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고통받고 싶지 않으면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들을 내 삶에서 도려내야 한다. 설사 그것을 도려내는 고통이 그 어떤 고통보다 크다고 해도 말이다. 도려낼 생각이 없으면서 고통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욕망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고통은 사라질 생각을 안 할 것이다.


명상은, 스쿼트 자세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모든 초점을 ‘명상적인 삶’에 맞춰가는 과정이다. 내 삶 전체를 바꾸지 않고 명상을 할 수는 없다. 삶이 먼저 바뀌어야 명상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명상을 알려줄 수 없다.


나는 방패 없이 세상에 나아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기꺼이 맞이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그 마음을 먹은 후 명상이 되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가이드를 듣고, 명상 수업을 들으면서도 도대체 알 수 없었던 명상이 비로소 실체를 드러냈다.




나의 내면 성장 단계


[1단계] 요동치는 고통을 분출하는 글쓰기 


~2017년

글을 배운 이후로 쭉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글을 썼다. 처음에는 보여주고 싶어서 썼다. 그러나 보여줄 곳이 없어서 간직했다. 어릴 때 쓴 글은 데스노트에 가까운 감정 분출 기록이었다. 글의 대상이 점차 타인에게서 나에게로 바뀌었다.

2018~2019

내 글을 누가 봐주기 시작하면서, 자의식이 외부의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화가 날 때도 글을 썼지만, 충만할 때도 글을 썼다. 고통받을 때만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 귀엽게 느껴진다. 일기를 데스노트로만 채우기에는 아깝지.


[2단계] 내 이야기에 몰입해 주는 타인과 대화하기


2020년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나와의 대화에서는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했다. 돈을 받는 대가로 약속된 시간만큼은 나에게 시간과 마음을 온전히 내어줘야만 하는 계약 관계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백 퍼센트의 집중은 늘 새롭게 위로가 되었다. 계약 관계 안에서 나는 상대가 내 편이라는 안정감을 가진 채로 나를 드러낼 수 있었다.


[3단계] 심리적 안정감 위에서 삶을 실험하기


2022년

지난 2년 간의 상담은 마음속 고통을 밖으로 꺼내어 보듬는 작업이었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갈 때가 되었다.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 더 이상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상담 선생님에게 말했다. 혼자 웅크리며 세상의 자극으로부터 나를 힘껏 보호하는 방식 말고, 세상의 파도에 몸을 맡겨보고 싶었다.


이 실험은 내 삶의 많은 가치관을 바꿔놓았다. 어쩌면 이게 마이클 싱어가 말한 [내맡김] 일지도 모르겠다. 


혼자 열심히 일을 해내는 삶에서 함께 협력하는 삶으로

이를 악물고 열심히 버티는 삶에서 흐름을 나를 맡기고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삶으로


2023년

자연스럽게 뇌과학, 명상, 끌어당김과 같은 주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종교가 없는 나에게는 뇌과학이 가장 강력한 설명이었다. 필요한 모든 것들이 물 흐르듯 내 앞에 나타났다.


유튜브 채널 [러브 포레스트]

여러 책과 정보들이 차례로 나에게 어떻게 명상을 해야 할지, 무엇을 배워야 할지, 나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알려주었다. 조금씩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이다음에 무엇을 만나게 될까 기대된다. 그 무엇이든, 그것이 심지어 고통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나는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배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만드는 공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