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타로 밀크티, 새로운 타로 푸딩
스무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꽉 찬 다섯 해를 보낸 대학시절은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느라 하루하루가 낯설었고 길었다. 불어불문학과라는 전공을 선택한 것도 모르는 세상에 대한 동경이었을 것이다. 영어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유럽의 언어. 에펠탑, 파리, 낭만으로 대표되는 언어. 글자를 사랑하는 십 대 소녀에게 불어불문학과는 꽤 적절한 스무 살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것들은 열광의 시기를 지나 익숙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지루해지면 다시 예전 것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스물네 살, 새로운 것에 마음을 뺏기기 좋은 나이였다. 한창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매일 새로운 브랜드와 기업을 공부했다. 신기술이라는 단어에 설레었고, 브랜딩, 마케팅, 신제품, 콜라보, 리미티드 에디션... 지금의 나라면 소비 판타지로 사람들을 꾀어내려 한다며 혀를 찰 테지만 그때는 그런 단어들에 쉽게 빠져들었다.
그해 여름 홍대에 공차가 생겼다. <대만 스타일의 달콤한 밀크티> 너무 궁금했다. 친구와 공차를 구경하러 갔다. 기존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컵보다 얇은 플라스틱 컵에 음료가 담겨 있었고 뚜껑이 없이 비닐 압축 포장이 되어 있었다.
"빨대 꽂아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직원의 모습이 바빠보여서 친절을 거절했다. 두툼한 공차 빨대를 비닐 포장 위에 꾹- 하고 찔러 넣었다.
윽...! 이래서 해준다고 했구나. 너무 천천히 세게 힘을 준 탓에 음료컵이 찌그러지며 빨대가 만든 비닐 구멍 사이로 음료가 쭉 흘러내렸다. 그 이후로는 공차 빨대 공포증을 호소하며 직원에게 요청했다.
"빨대 꽂아서 주세요.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에 공차가 문을 연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홍대 거리에서 통통한 빨대에 입을 대고 쭉 음료를 들이마셨다. 주로 타로 밀크티를 마셨다. 쫀득쫀득한 타피오카 펄과 함께 달콤하면서도 이국적인 타로의 맛이 느껴졌다.
"으으으 너무 달고 맛있어!!"
지금은 단 음료나 디저트를 잘 먹지 않는다. 회사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카페에 갈 때면 말한다. "팀장님, 카페 어디 가실래요? 아! 공차는 빼고 말씀해주세요." 그러나 그때는 달달한 음료를 하루 한잔 꼭 마셔야 했다. 카페 모카, 아이스 초코, 토피넛 라테, 타로 밀크티를 주로 마셨다. 관자놀이가 찡긋할 정도로 단 음료를 먹어야 하루치 에너지가 보충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찌던 시기이기도 했다.
타로 밀크티를 마시며 '너무 단 것 아니야?'라고 느낄 때쯤 공차 매장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타로를 잊었다. 몰랐었고, 새로웠고, 열광했고, 익숙해졌다가 이제는 잊어버린 타로를 다시 만난 것은 서른셋 겨울이었다. 평소에 눈여겨보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타로 구이 사진을 봤다. 건강한 먹거리를 직접 해 먹는 모습이 새롭고 재밌어서 자주 들르던 계정이었다.
작은빛농원의 왕토란(타로) 맛있어요
간식으로 최고!!!
우리나라에서도 타로가 재배되는구나, 왕토란이라고 부르는구나, 사진 속 타로의 단면을 봤다. 와! 흰색 속살에 연보라색 무늬였구나, 예뻐라. 타로가 어떤 작물인지 몰랐는데 신기하네. 궁금한 마음에 작은빛농원에서 타로를 주문했다.
타로 밀크티 맛일까. 타로의 진실을 알게 되면 어쩌지. 내가 알던 타로 맛이 사실 시럽 맛인 거 아니야?
튤립 구근 같기도 코코넛 같기도 한 타로는 내 주먹보다 컸다. 감자칼로 껍질을 벗겨내니 과연 속살이 뽀얗게 하얗다. 2cm 큐브로 잘라서 찜기에 쪘다. 부드럽게 찐 타로 한 조각을 먹었다. 음....음 고구마나 감자 같은데 생각보다 밍밍한데. 역시 시럽 맛이었어. 타로 밀크티의 진실에 배신을 당한 듯 씁쓸해하다가 작은빛농원 블로그에서 타로 맛있게 먹는 법을 발견했다. 설탕에 찍어 먹으면 가장 맛있다고?
설탕에 찍어 먹는 순간 '이거다! 이거였구나' 소리를 질렀다. 비록 설탕이 첨가되긴 했지만, 내가 알던 타로의 맛이었다. 그렇다면 타로 밀크티를 만들어볼 수도 있겠는데? 찐 타로와 코코넛 밀크, 비정제 설탕을 믹서에 갈아서 마셔보니 정말 타로 밀크티의 맛이었다. 건강하게 단 맛의 타로 밀크티. 밀크티라기에는 푸딩처럼 꾸덕한 식감인데 오히려 이게 더 좋았다. 고구마 무스 같기도 하고, 코코넛 푸딩 같기도 했다. 그럼 아예 푸딩으로 먹지 뭐. 한천 가루를 조금 넣고 냄비에서 가볍게 졸여내어 냉장고에 굳히니 타로 푸딩이 되었다.
타로 푸딩과 곁들일 차를 골랐다. 연하게 우린 실론티. 뻑뻑하게 밀도 높은 타로 푸딩에 연한 실론티가 잘 어울린다. 푸딩 한 스푼 꿀꺽, 실론티 한 모금 쪼르르
아침에 만든 타로 푸딩을 냉장고에 넣어둔 후 집에 돌아와 먹었다. 소파에 앉아 타로 푸딩을 먹으며 생각했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참 한 끗 차이란 말이지. 타로 밀크티는 이제 별로 새로울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갈색 타로 뿌리를 보면서 신기할 만큼 새로웠다. 타로를 쪄 먹으며 새로운 채소의 경험에 즐거웠다. 그 채소에서 한때 좋아하던 맛이 나니 반가웠다. 타로 푸딩을 먹는 경험은 새롭고 익숙했다.
익숙한 것도 관점에 따라 새로울 수 있고, 새로운 것도 시간에 따라 익숙해질 수 있다. 스마트폰이 그랬고, 망고가, 마카롱이, 보성의 녹차가 그랬다. 최근 문을 연 채소 레스토랑들을 보면 저마다의 모습으로 새롭다. 우리가 자주 먹는 시금치, 당근, 두부, 대파 같은 재료들은 그들의 손에서 매번 새로워진다. 내가 만들고 싶은 일상이 바로 그런 것이다.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식재료를 탐하기보다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채소로 새로운 식탁을 꾸리는 것.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입던 옷을 새로운 맵시로 입어보는 것. 다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것.
모르는 채소를 겁내지 않고 맛보는 것, 나와 다른 사람을 가까이해보는 것, 읽지 않던 책을 펼쳐보는 것, 새로운 환경에 나를 놓아보는 것.
새로운가 익숙한가 판단하지 않는 마음. 편견이 없는 생각. 두려움이 없는 태도.
나는 그런 것들로 일상을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