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채소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주변에 알렸더니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 채소만 먹는 건 아니지?” 또는 “혹시 채식주의자인 거야?”
“채소를 좋아하고 채소를 예전보다 많이 먹게 되긴 했는데, 고기도 먹어. 비건 베이킹을 취미로 하지만, 우유 들어간 라테나 버터 들어간 빵도 사 먹고.”
대개는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지만 가끔 검열대에 오르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채식주의자도 아니면서 채소에 대한 책을 쓰다니, 하는 눈빛.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난 후에도 비슷한 반응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이라도 일회용 컵을 사용하면 나의 모든 진심을 의심받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이었다. 스스로 그동안 줄여온 플라스틱 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고 일회용 컵을 쓸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0% 아니면 100%여야 하는 이유는 없는데, 스스로를 검열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채소를 먹는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아니다. 왜 채소를 더 많이 먹게 되었는지, 왜 일회용품을 줄이고 싶어졌는지다. 어떤 계기로 행동의 변화가 일어났고, 그래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가치관과 지향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채소를 가까이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여전히 거대 자본인 대기업에서 일하며 그 월급으로 일상을 유지해 나가고, 아파트에 살고 있고, 계절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새 옷을 사 입고, 친구들을 만나면 요즘 힙하다는 식당에서 고기 요리를 먹기도 한다. 다만 동시에 내가 누리고 즐기는 것들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공부하고, 사람들이 대부분 철석같이 믿는 것들을 의심하고, 사회에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다. 올해는 처음으로 환경 단체와 어린이 인권 단체에 기부해 보았다.
세상에는 변화를 지휘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나와 같이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천천히 일상의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모두가 활동가라면 그들의 활동비는 누가 충당할까? 나와 같은 생활인이 기부도 하고 홍보도 돕고 책도 사야 한다.
완벽하게 옳고 완벽하게 무해하고 완벽하게 아름답기 위해 나를 잃고 싶지 않다. 나답게 조금씩 천천히. 이리도 가 보고 저리도 가 보면서 나다운 일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꿈꾸는 채소로운 일상, 채소로운 매일매일이다.
** 4월 5일 식목일에 출간된 저의 첫 책, 채소 에세이 <매일매일 채소롭게>의 일부입니다.
책의 내용 중 10개 꼭지를 골라 조금씩 소개하려 합니다.
이 글은 프롤로그 <우리가 꿈꾸는 채소로운 일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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