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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May 17. 2019

억센 두릅도 익히면 부드럽다

5월, 두릅꼬치구이와 솥밥

요가 학원에 갔다.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반가운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 저 기억나세요? 수업 몇 번 듣고, 한동안 못 뵜었네요"

"아~ 네! 잘 다니고 있었어요?"


"저 1년 넘게 꾸준히 다니고 있어요. 늘진 않았지만."

"그럼 됐지 뭐! 늘어서 뭐하게?"


맞네! 늘어서 뭐해.

지금도 한 시간 운동하면 충분히 개운하고, 아픈 데도 없고,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도 잘 풀고 있는걸.

안 되는 동작을 만나면 좀 답답하긴 하지만 안되는 대로 움직이며 운동하고 있으니 됐지 뭐!


선생님들이 고승처럼 툭툭 건네는 한 마디 때문에 요가에 더 중독되는 것 같다.


늘어서 뭐하게?



내가 다니는 요가 학원 수업은 몸과 마음을 자각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하루종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쓰며 살고 있다. 애를 써보기도 하고, 지쳐서 내던져버리기도 하고, 즐겁게 이리저리 움직여 보기도 한다. 매 순간 함께하는 몸과 마음이니까 충분히 내 몸과 마음을 느끼며 산다고 생각했다.


처음 수업을 받았던 날 받았던 충격이 떠오른다. 가만히 누워 내 몸 구석 구석을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내 다리와 척추, 목뼈, 어깨가 지금 어떤 자세로 있는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떤 감각인지 느껴보는 것이다. 두 눈을 감고 아주 집중해서 내 몸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왼쪽 다리가 바닥에 더 가까운 가요, 오른쪽 다리가 더 가까운가요?"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 중 어느 쪽이 더 올라가 있는 것 같나요?"


느껴지는 대로 대답을 했는데, 모두 틀렸다. 내 몸을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보는 것도 같았다. 명상을 하면서 나는 폭풍처럼 밀려오는 감정 더미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다. 늘 그러려니 애써 외면하고 넘어갔던 내 감정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내 안에 가득한 분노와 화가 가장 먼저 올라왔다. 그러나 슬픔, 우울감이 느껴졌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감정의 파도가 잠잠해졌다. 내 감정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 건, 명상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지난 뒤였다.


몸도 마음도 어느 정도 '내가 어찌해 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때 쯤이었다. 선생님에게 "늘어서 뭐하게?"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잘하고 싶었구나. 내 몸도 마음도 잘 다루고 싶었구나.


애쓰지 말아요
그냥 바라봐 주면 되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났다. 기본적인 메뉴들을 한 번씩 만들어봤고, 입맛에 맞는 음식은 여러 번 반복해서 해 먹었다. 이제는 요리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은 기본적으로 있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을만큼 예쁜 요리를 만들고 싶어졌다. 흔하지 않은 나만의 요리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보기 좋은' 요리를 하려는 마음이 '나를 위한' 요리를 하려는 마음보다 커졌다. 그 즈음에 봄나물을 만났다. 봄나물은 재료 그 자체로도 맛이 있다. 그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채소들은 가볍게 요리해도 자신의 맛을 보여주었다. 채소 자체의 맛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요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재료들을 바라봐 주고, 알아주고, 이해해 주고 싶어졌다.


계절의 맛은 그렇게 시작했다.


두릅은 좀 쓴데?


4월부터 5월은 두릅의 계절이다. 땅두릅, 참두릅, 개두릅, 나무두릅. 여러 가지 이름과 모양의 두릅이 여기 저기에 보인다. 추위가 가시고 더위가 오기 전, 두릅은 자주 만날 수 있는 재료이다. 두릅을 먹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숙회로 먹는 것이다. 소금물에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는 방법으로, 식당에 가면 밑반찬으로 흔하게 내어준다.

두릅 숙회를 초장에 찍어 먹고 처음 반응은 시큰둥했다. "응? 쓴데? 두릅은 다른 봄나물보다는 매력이 없는데" 쉽게 만날 수 있는 재료로 계절 요리를 해 먹기에 두릅만 한 것이 없는데, 두릅 맛이 이러면 어쩌지? 두릅으로 다른 사람들은 뭘 해먹나 책도 보고 영상도 찾아봤다.



두릅 꼬치 구이, 그리고 두릅밥.

두 가지 요리 방법은 다른 재료들로도 쉽게 활용할 수 있고, 더군다가 무조건 맛있을 수 밖에 없다. 꼬치 구이는 버섯과 함께 꼬치에 꽂은 후 팬에서 굽는다. 부들부들하게 구워 지면, 데리야키 소스를 얹은 후 뒤집어 준다. 끝! 자연드림에서 산 억새꽂이에 꽂으니 자연스러운 모양새가 예쁘다.

두릅밥은 솥밥으로 하면 고슬고슬 더 맛있겠지만 집에 있는 전기밥솥으로 지었다. 예전에는 새로운 요리 도구들을 장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뭐든 집에 있는 도구와 재료들로 해보려고 한다. 주인공은 도구가 아닌 재료 그 자체이니까. 두릅으로 밥을 지으면 데쳐 먹는 것과 다르게 다른 부드러운 식감으로 변한다. 푹 삶은 감자 같기도 하다. 밥을 지을 때, "간장/버섯/참기름"을 같이 섞었다.

일본에서는 이런 밥을 '다키코미고항' 이라고 부른다. 밥에다가 고기, 생선, 채소 등의 재료를 넣고, 간장이나 다시마 육수로 양념을 한 쌀 요리이다. 나는 '맛밥'이라고 부른다. 재료들로 맛을 낸 밥이라서. 그러니까 이 밥은 두릅을 넣은 맛밥. 맛밥만 있으면 밥만 먹어도 든든하고 한 끼 식사를 먹은 것 같다. 주말에 많이 만들어 두고 소분해서 냉동시켜 두면 평일에 바로 먹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요리는 간단하고 맛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뭐든 어려우면 결국 오래하기가 어렵다.


다시 요가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나는 요가를 잘 하지 않기로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가를 잘 한다고 특별히 내 생활이 더 나아진다거나 이득이 되는 건 없다. 요가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요가를 하면서 안정을 찾는 것, 내 몸과 마음에 대해 좀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요가를 아주아주 잘 하게 되어서 요가 선생님이 될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타고나게 몸을 잘 못 쓰는 나로서는 강사가 될 만큼 요가를 잘하게 되려면 직장을 그만두고 하루종일 요가만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요가로 돈을 벌기 위해 요가를 하다가 돈을 벌지 못해서 결국 요가를 못 하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늘어서 뭐하게?" 정말 궁금한 표정으로 내게 묻던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맞아! 그냥 요가를 하면 되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쉽고 편하게! 선생님이 요가 시간에 늘 하는 말씀이다.


쉽고 편한만큼, 나에게 다정하게


요리도 그렇게 해볼 생각이다. 쉽고 편하게, 그리고 나에게 다정하게. 오늘도 나에게 건강한 요리를 만들어 주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그럼! 요리 늘어서 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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