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어느 면접의 참상
낯선 이 앞에서 나를 소개하고, 질문을 주고받은 실로 오랜만의 긴장감이었다. 누군가는 이러한 자리를 수도 없이 다니고 있을 터. 애써 글로 옮기려고 했던 마음이 가득했던 날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생각이 머무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그 날의 상념들을 글로 정리하고 풀려한다. 생각을 간결하게 털어낼 수 있는 방법 중 글쓰기는 탁월한 해소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당신의 단점은 무엇입니까?"
질문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몇 년 전 입사 면접에서는 자신의 '강점'을 물었고 지지난 해 일대 다면접에서는 '잘하는 것'을 물었는데 단점이라니. 나로서는 너무나 많은 나의 단점 중 무엇을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는 면접 질문에 대한 불만이나 불평이 아니다. 그 질문에 대처하는 나의 어떠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단점보다는 장점, 강점과 같은 질문의 대답을 준비해 갔던가. 아니면 그 질문에 익숙했던 것인가. 찰나의 말도 안 되는 생각보단 답이 먼저였다. 아마 면접관은 자신의 단점을 가감 없이 말하는 면접 응시자의 태도 등과 관련한 것을 보려 한 것일 수도 있겠다. 단점은 극복대상 또는 다르게 보는 경우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간악한 믿음으로 던진 대답은 양면성을 가진 것이어야 했을 것이다. '솔직한 것이 흠이다'와 같은 맥락의 것.
면접 질문의 대부분은 면접관이 나를 짧은 시간 내에 회사에 적합한 인물인지에 대해 파악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오가는 질문과 대답 사이의 호흡이 그 상황의 분위기를 바꾸고, 자신을 표현함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형태를 통해 끌고 가야 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인 것을.
단점이라는 말을 어학사전에서 보면 '잘못되고 모자란 점'이라 풀이되어 있고, 문장은 '단점을 들추다'와 같이 쓰여 있다. 떼어 놓고 보면 그대로이지만 맥락으로 풀이할 경우 우리가 대화 중에 쓰는 "내 단점은.."이라 시작되는 말의 내용은 이러하다. '내 단점을 잘 알고 있으니 고치거나 극복할 수 있다. 할 것이다'라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대답이었던 솔직함이라는 것을 단점으로 포장한 나는, 그 순간 면접을 망쳤음을 알았다. 간악한 믿음이 낳은 최악의 수.
답답한 마음을 담아 지인에게 이러한 대답을 한 상태를 하소연하니 "단점을 말하라니까 자랑을 하고 왔네."라며 툭 집었다. 솔직하다면서 스스로에게 위선을 떤 나는 과연 그곳에서 앉아 무엇을 한 것일까. 면접관이 갑이고 응시자가 을이라는 사실은 겉으로 보기엔 그러하지만 실은 응시자도 면접관도 서로를, 회사를 탐색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는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단점을 들추기 싫어하는 쑥스러움으로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닌가.
감각이 무뎌질 만큼 성장통을 앓고 있는 나에게, 그 날의 면접을 돌이켜보며 '어쩌다 그리했니'라는 질책보다 간결하고 명확한 태도로 '실패', '실수'라 따끔하게 말해주고 차분히 지나가고 싶다. 결코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중략) 늘 성장통이란 말을 끄집어내게 된다. 그런데 합당한 말인가. 그 말이 비록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가득 안고 있다 하더라도, 젊은 날의 고뇌와 고투를 그 미숙함의 탓으로 돌려버리게 하기에도 십상이다. 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 내가 4.19와. 5.18의 중간 어름에서 이 글을 쓰고 있기에도 하는 말이지만, 경무대 앞에서 그 많은 학생들이 무얼 몰라서 총 맞아 죽은 것이 아니며, 거대한 폭력에 에워싸인 광주의 젊은이들이 그 마지막 밤에 세상을 만만하게 보아서 도청을 사수하려 했던 것도 아니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는 잘 만들어진 실패담이다. 성장통과 실패담은 다르다.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힘을 다 바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 않는다. 그 실패담이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였다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간다. (2011) _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