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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Mar 17. 2017

어디든 어울리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외투

동네 밖 산책_대학점퍼이야기

요즘 같이 동네에 머무르는 날이 많을 때 일 수록 동네 밖에 나가게 되면 눈이 바빠진다.
사람 구경, 새롭게 생긴 가게를 들여다보고 낯선 길도 한 번 걸어보려 드는 습성 때문이다.
벌써 몇 년째 Y대 치과병원을 다니고 있다. 몇 번의 공사도 있었고 그 사이 그 앞에 큰 응급실이 생기기도 했으며 중앙버스정류장이 생기기도 전부터 다녔으니 그 곳의 모습은 이미 내가 알던 예전의 모습은 아니다.
최근 나는 그 곳에 갈 때마다 학생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학생시절때부터 다녔던 곳이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학생이라고 하기엔 그 나이를 짐짓 삼십대로 짚을 수 밖에 없는 상태다. 병원을 가는 것이니 굳이 메이크업을 할 필요도 차려입고 갈 이유가 없는 것도 한 몫 하는 것이겠지.
오늘은 봄학기가 시작되고 한 두어주쯤 지난 어느 날이겠거니 싶다. 학교 이니셜이 박힌 점퍼. 짧고 얇아진 옷차림,

길을 몰라 두리번 거리는 학생, 밝고 따뜻한 햇살.


남들이 다 하는 자율학습을 빠지고서 청소년 인권이 어쩌고저쩌고 하고 다녔던 시절,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선포한 날, 엄마는 울었다. 유리짝보다도, 그 흔한 습자지만도 못한 나의 마음은 엄마를 괴롭게 한 죄 같은 기분을 느끼곤 '대학을 가야한다' 생각했다. 자율학습이다 뭐다 하나 같이 다 빠졌던 나는 과연 무슨 수로 대학을 간단 말인가. 고고한 척 학생회장의 타이틀로 갈 수 있는 대학들 마저도 내신(학교성적)이 받쳐주지 않았던, 그야말로 대학을 간다는 것이 신기한 성적이니 말이다. 하는 수 없이 남은 몇 달만이라도 공부를 해보자는 심산으로 가을부터 문제지를 펼쳤다. 갑자기 방과 후 자율학습 도서관에 들어가는 날 본 담임은 이상하게 여겼지만 굳이 모든 과정을 설명할 필요 없었던 나는 그렇게 몇 달만 지겹고 쾌쾌한 그 곳을 들락거렸다.

결과는 당연히 낙방이었다. 세 군대의 대학을 지원할 수 있었던 그 때에 세 곳의 대학에서 전부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노량진으로 갔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0시에 나오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아침부터 비릿한 생선냄새를 시작으로 밤이면 구정물 냄새까지 덮어 씌워진 그 곳을 수 개월 왔다갔다 했다.
그 즘 나는 Y대 치과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불편했던 턱관절과 치열이 고르지 못했던 것을 중학교때부터 부모에게 졸라 교정을 해달라했으나 그것은 겨우 재수학원에 들어가서야 이뤄졌다. 공부도 해야 하고 병원도 다녀야했고 하루 종일 쪼여드는 치아의 철사들 덕분에 예민할 대로 예민한 나는, 그 핑계로 가방 둔 채로 학원 밖을 나가 있기 일쑤였다. 매일 같이 교실에서 부딪히는 재수생들과의 친분도 점차 두터워졌다. 그럴 수록 저녁 시간은 노량진 저 어디 구석쯤에서 술 한 잔 걸치는 시간이었다. 언제나 되든 안 되든 호기롭게 지르고 보던 나의 성향은 그 때 역시 Y대에 가겠다고 했었다. 사실 턱도 없는 소리였다. 나는 공부에는 재주가 없다. 물론 우리 엄마, 아빠는 절대로 그렇게 믿지 않았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반에서 꼴찌도 해봤고 그게 분해 바로 10 등 안에도 들었던 나의 성적표를 제대로 본 적 없기 때문이거니와 반장, 학생회장을 도맡아 하는 덕에 굳이 더 공부를 잘 할 필요가 없었다. 좋아하는 공부만 했다. 역사, 국어, 문학, 사회, 지리, 등 인문계열 공부만 하는 내게 당연히 수리영역은 기초가 없는 상태고, 물리, 화학과 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는 과목들이다. 그러니 Y대라니.........
턱없이 모자란 소리를 하는 거지. 하지만 그냥 막연히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뭐 운이 좋다면야.
사실 돌이켜보면 정말 막연히 '갈 수 있다면 좋겠다'였지 그곳이 꼭 목표인 것 마냥 '가고야 말겠어'는 아니었다. 뚜렷한 목표지점이었다면 갈 수 있었을까, 사실 그건 잘 모르겠다.

난 왜 Y대에 가고 싶었던 걸까.

그건, 좀 우스울 수도 있는데 학교 이니셜이 박힌 점퍼와 고등학교 때 그 곳에서 열렸던 기자 강의를 들었던 기억 때문인 듯 하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 캠퍼스를 한 번 쯤 가봤다고 한다. 가서 둘러도 보고 의지도 다졌다는 데. 나는 정말 그 때 대학이라곤 생각조차 없었나 보다.
방학 때 기자 강의가 듣고 싶어 이리저리 찾아보던 중 가격이 심하게 저렴한 강의가 있어 신청했고 그 장소가 Y대였다. 대학을 입학도 하기 전에 가본 대학 캠퍼스는 그 곳이 전부였다.


당시 학생들이 맞춰 입고 걸어가는 점퍼가 유독 눈에 들어왔었다. 학교 영문 이니셜에 크게 박힌 야구점퍼 형태였는데, 이상하게도 그 옷에는 샤랄라 원피스도 잘 어울려 보였다. 어떤 옷도 소화하는 그 점퍼가 참 이상하게 느껴졌고 옷 가게에서 그런 점퍼를 사려 하면 이상하게도 참 안 어울렸다. 영문 모를 일이었다.

오랜만에 그 곳을 돌던 나는 당시 봤던 점퍼의 형태도 많이 바뀌었고 색도 다양해지며 숫자 등으로 학번을 표기하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야구점퍼 형태만큼은 변함이 없었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짧은 스커트에 입은 학생을 보면서 십 여년이 지난 지금도 잘 어울리는 구나 생각했다.

내가 다닌 대학은 그런 점퍼는 없었다. 고작해야 동기들끼리 맞춰 입은 후드티셔츠 정도였고 그 마저도 학생회비로 충당하는 논란으로 내 기억으론 한 학번 정도만 맞춰 입었던 걸로 알고 있다. 딱히 대학점퍼나 과티셔츠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학교도 점퍼를 맞춰 입었다면 나는 과연 입고 다녔을까를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답은 안 입었을 것 같다.
분명히 그 안에는 여러가지 감정과 은연 중에 끼여 들어간 선입견, 고정관념, 비루함 등이 들어 있다. 굳이 일일이 나열하고 밝히고 싶지 않은 사회의 단면이라 일축하고 싶은.

뭐가 어찌됐건 오랜만에 들른 캠퍼스 안과 밖에서 파도 타기를 하듯 쉭쉭 지나가는 다양한 대학 점퍼를 보면서 아무 옷이나 다 소화하는 저 옷은 아마도 처음으로 대학이라는 사회에 나와 교복을 벗어던진 그들에게 주어진 소속감 정도이지 않을까
학년이 올라가면 학교의 특정한 행사 외에는 입지 않게 될지도 모를 .

그때, 딱, 그 순간에, 꽃샘추위 한 가운데, 조금은 따뜻한 순간을 만들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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