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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Mar 09. 2017

나의 카페

추억 속의 카페 '에스파소'


좋은 카페를 하나 만난다는 건 내게 아주 크고 소중한 일이다.
커피 맛도 맛이지만 늘 책과 노트북을 끼고 다니는 나에게 적합한 작업공간이 필요하다.

돈을 버는 일도, 딱히 누구에게 요청 받은 글을 쓰는 일이 아니어도 나는 일상을 끄적이는 행위,

다이어리에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대본 작업을 하는 것이 보장되는 카페가 필요했다.

가족들과 함께 살던 때에는 더없이 그러한 공간이 필요했다. 어쩐지 집은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2009년 그 즈음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다닌 탓에 졸업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마쳤다.' 이제 그곳을 벗어난다는 정도였을 거다. 정체된 것이 아닌 채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였고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들을 필요로 하는 때 였다.

새롭게 운동을 시작했고 그 외에 시간엔 졸업을 위해 듣는 몇 개의 강의 빼고는 시간이 남았다. 시간을 잘 녹여 쓸 만한 공간이 필요했다.

당시 운동을 하러 다니는 스튜디오 1층에 공사가 한창이었다. 점점 형태가 잡혀가는 것을 보니 카페였다. 집에서 길 건너면 바로 있는 가깝고 널찍한 카페였다. 나무 테라스를 만들고 전체적으로 갈색톤으로 잡은 이 카페가 오픈하자마자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겉에서 보이는 공간보다 안으로 더 길고 널찍하게 자리 잡은 카페는 벽면은 전부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테이블 마다의 자리도 널찍하게 소파로 구성된 고급스러우면서도 질서있어 보이는 곳이었다. 맛있는 커피를 저렴하게 팔기 까지 하니 나에게 이보다 좋은 공간이 있을리 만무했다.


사진이라도 많이 남겨둘 걸 그랬나보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동안 공간에 대한 사진이 없다. 당시, 에스파소


버스정류장 앞이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쪽으로 흡연공간이 있어 꽤 불편해보였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도 그렇거니와 매장 입구이다보니 여러모로 여자들에게는 불편할 수 밖에 없어 보여 오지랖으로 냅킨에 사장님께 다른 흡연공간이 있어야 할 거 같다는 말을 남기고 일어났다..
다음에 카페를 방문했을 때 놀랍게도 흡연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환풍기까지 설치했더라. 나는 그제야 냅킨 쪽지가 생각났다.

'사장님 매력 터지네.'
새로 오는 손님들에게 가볍게 말을 건네는 그의 방식은 새로운 들어온 와인 한 잔 권하는 것, 혹은 커피 한 잔을 건네는 정도였다.

그 외에 오래 앉아 있던 무엇을 하든 사장님은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고 있었다.
널찍한 주방은 대체 뭘 하나 싶었더니 신선하고 풍성한 채소들로 처음 맛 보는 샐러드를 만들었고 가볍게 먹을만한 머랭을 팔았고 일리(illy)커피는 마진이 남을까 싶을 정도로 저렴하게 팔았다.

'에스파소' 벌써 사라진 지 6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도 나는 그만한 나의 카페를 찾지 못했다.
하루에 두 서너번씩 방문할 때만 해도 사장님과 별다른 인사나 대화가 있지 않았다. 그마저도 너무 편했다. 대부분 나는 혼자 가서 몇 시간 책을 보거나 타자를 두들기다 오기 때문에 쉽게 말을 걸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멀다하고 나는 그곳에 똬리를 틀었고 그렇게 모여든 단골들이 한 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지인들과도 그곳에서 만났다.

사장님은 어느날, 지인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사이 우리에게 와인 한잔을 권했다. 들여올지 고민인데 시음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문을 트곤 내 자리는 저 구석 소파 자리에서 바(bar)로 옮겨졌다. 옮겨져 온 손님은 나 뿐 만이 아니었다. 사장은 자신을 캡틴이라 불러달라 했고 그는 음악을 좋아하고 풍류를 아낌 없이 즐기는 히피스타일 두건남이었다. 수염과 안경, 두건으로 인상 지어지는 그가 틀어주는 음악은 인기차트 top100 이런 것이 아니었다. 어느날은 내가 감명깊게 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ost 부터 클래식까지 그의 음악 세계는 다양하고 깊었다.
이 곳에서 만난 언니는 연하 애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이 곳에서 만난 친구는 결혼해 합정 쪽에 카페를 열었다. 시간이 참 많이 흘렀고 그때 당시 그가 이 가게를 떠난다는 사실에 우린 모두 침울했다.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동안 이곳에서 만나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글도 쓰며 보냈던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지는 때 였다. 그는 제주에 새롭게 가게를 오픈했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곳에 가보진 못했다.

얼마 전 [파리카페]라는 책을 보다 에스파소 생각이 간절했다. 90년 넘게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카페 '셀렉트'에 대한 예찬과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에 대해 담긴 책이었다. 한 카페를 책으로 남길 만큼 단골도 많고 몽파르나스 근처다 보니 젊은 예술가부터 오래 전 헤밍웨이까지 다녀갔다는 카페 셀렉트.

3대 째 별다른 변화없이 다른 카페들의 트렌디한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게 된다는 그 곳.
90년이라는 것이 가늠하기 쉽지 않은 세월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켜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카페 에스파소에서 기약도 없이 아침이나 낮에 만나면 커피 수다로, 다 늦은 밤이면 언더락 잔과 와인 한 잔으로 이야기 나누고 음악을 듣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었고 누구도 그저 지나쳐 가지 않았던 그 곳이 지금까지 유지 되었다면 이곳 저곳 카페를 전전긍긍하는 내 신세가 좀 달라졌을까.
그가 사라지고 난 카페는 생기를 잃었고 우리는 조금씩 가게의 변화에 지쳐가고 있었다. 나 역시 서울로 이사하게 되면서 추억의 장소로만 남게 된 그곳을 한 번 들러가는 정도였다. 새로 운영을 맡은 사장은 나에게 매니저 자리를 요청했고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곳은 내 힘으로 다시 예전처럼의 생기를 가져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 후 1년 뒤 그곳은 동물병원으로 변했다.

처음 오픈 했을 때 이미지가 이랬던 기억으로 그렸지만 실로 이 보다 더 따뜻한 느낌이었는데.

제주에서도 마땅한 카페를 찾지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 새로 이사 온 이 동네에서도 여전히 이 곳 저 곳을 전전긍긍하며 다닌다.


예전에 굿과 관련된 글을 쓰면서 굿은 병든 가족이 있거나 집안에 재앙이 있거나 할 경우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럴 때마다 자주 불러다 쓰는 무당을 당골(단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마 단골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자주 불러다 쓰는 무당으로 부터 마음의 안식과 위안을 받는 것이 아니였을까.

 에스파소는 마음의 안식과 좋은 사람들로 생기 가득 했던 곳이었다. 나에게 당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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